이팝 꽃이 필 때면 이팝 꽃 하나하나에는 찍지 못한 빛 바랜 추억들이 조랑조랑 달려있다. 늘 술에 젖은 아버지의 불그스레한 얼굴 따리에 짓눌려 납작해진 어머니의 정수리 고양이 발로 살금살금 대며 넘나들던 과수원 서리 마주 보며 깔깔 대던 칡 물 들어 새카매진 혓바닥들 행여나 곁눈질하던 새하얀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1.05.17
영혼을 삼킨 그림자 굳이 내 것이라 우길 이유가 없다. 태양이 서쪽에 떠오른다 한들 바뀔 리 없으니 굳이 네 것 내 것 다툴 이유가 없다. 이 세상 가장 공평하게 서로 받은 것이니 굳이 내 것일 이유도 없다. 살아 가며 네 것이 내 것이 된다 해도 아무 소용 없으니 너무도 태무심(殆無心)하여 그 응보(應報) 톡..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1.04.27
나의 그대(베게)여 고고성(呱呱聲)이 울리기를 머리맡에서 기다렸지 부모에게는 설렘과 기쁨을 안겼었고 내 눈물과 웃음을 죄다 삼켜버리고도 한마디 말조차 아끼며 숨죽여 지냈던 그대여 지친 발을 어루만져 주었고 쓰라린 가슴은 포근히 감싸 안아 주었지 무거운 머리 쓰다듬고 위로하며 심신의 보금자..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12.23
동곳과 비녀의 회한(悔恨) 동곳이 비녀를 만나면 무슨 말 할까? 그나마 제 보다 나은 서로의 빛깔을 부러워할까? 기억의 황혼 길에 부여 잡고 설음의 눈물 흘릴까? 설마 이런 날 올까 꿈엔들 생각했을까 마는 어느 뉘를 탓하랴 살며 동곳과 비녀 되어 원앙금침 속이 영원한 안식처라 여겼으리 이제사 온기 식은 이부자리 곁눈질..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11.13
5초의 기억 무엇을 하려고 여기 왔을까 뒷머리 긁적여 봐도 머리 속은 훤한 대낮 어디에 두었을까 고래 찾아 서랍까지 뒤져도 가슴 속은 칠흑(漆黑) 같은 밤 돈이 왜 이렇게 빌까? 세도 또 세어 봐도 지갑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이게 왠 돈일까 입은 귀에 걸렸지만 도무지(塗貌紙) 당해 본들 알까 그래 그렇지 그런..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11.09
구름이 그려가는 하늘의 꿈 하늘은 무슨 꿈을 꾸을까 밤 늦도록 별과 달과 바람과 속삭이더니 뭉게구름 새털구름 먹구름이 그려가는 하늘이 들려 주는 전 날 밤 꿈 이야기들 잃어 버린 퍼즐 조각을 기억하며 애써 맞춰 보지만 드문드문 일 뿐 혹시나 그 속에 내 이야기 있나 하여 한참을 찾아보니 솜털 같은 아기 구..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11.02
왜(?)냐고 물음에 준비하세요 왜? 해야 하냐고 아니 꼭 나냐고 준비 않은 느닷없는 반문에 순식간 신기루 되어버린 지나온 길 혈육 지간 일에 왜냐 하니? 말문이 질식사 해버렸습니다. 반문이 스친 공간에는 자책 가득한 새까만 정적 뿐 여차하면 태생의 이유도 물을 터 단단히 배수진을 쳐야 할까요 세월 지나면 A/S 없..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08.14
새 등대지기 사람들의 물결 시계 추 마냥 뒤돌려 마주치는 눈길 떨어지면 끌려오듯 되돌아 오고 갈림길에는 시간을 멈춘 걸음 고무줄로 이어진 시선과 걸음 인파의 바다에 등대 불을 앞서 비춘다. 이십 년 전 등대지기가 되었건만 항법장치 마저 고장 난 고물 배 선장으로 전락 된 심정이란 아직 불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06.08
우리 동네 자화상(自畵像) 갑작스런 새벽 한기에 하얗게 질려 버린 연탄재 대문 앞 발 구르다 군데군데 쪼그려 앉아 있고 동녘 햇살 눈 웃음 치기 무섭게 슬레이트 지붕 위로 일광욕 나온 고양이 가족들 한 잔 낮 술이 해질녘에는 갈지(之)자에 꼬부라진 혀로 오가는 놈 잡아 주먹다짐에 육두문자(肉頭文字) 난무하..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02.10
반달 그대 살포시 감아 눈 뜨면 고백할까 콩닥거리는 가슴 애써 가누며 살을 에는 바람에도 참고 기다렸지요 이슬처럼 초롱이는 눈 망울로 무슨 말을 들려줄 듯하여 잠시도 눈 뗄 수 없었지요 새벽 잠 덜 깼나 하여 몇 번이고 눈 비벼 봐도 휑하니 사라진 그대의 눈 별 빛 마저 날 세운 겨울 빈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1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