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내 태어난다면 자유로운 새가 되리라 번민(煩悶)의 울타리를 비웃는 새가 되리라 육신에 기생하는 영혼아 날갯짓 하여라 밑밥의 교태(嬌態)에 고개 숙이지 않는 시간의 바람결 처럼 욕망의 땅에 착지(着地) 않는 새가 되리라 새가 되리라 내 다시 태어난다면 깃털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영원히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12.22
올 가을은.... 올 가을은 무척 주렸나 보다 발그스레 전희(前戱)도 생략한 채 금새 훌러덩 옷 벗고 요염한 눈 빛으로 삭풍(朔風) 힐껏 보며 일전(一戰)을 불사할 기세다 하기사 오래 된 마누라 처럼 벗던 입던 언제는 관심 보였었나 알 몸 되어 시선 돌리니 그제야 정신 확 돌아 오는가 올 가을은 걸어 온 뒤안길인가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12.08
마음의 퍼즐 금방 손에 모든 걸 쥐 듯 바쁘게 만들어 보았지만 그것은 전날 밤에 꾸었던 아련한 꿈이었다. 들고 나섬의 단순한 퍼즐 조각을 이해 못한 어리석음이 모두를 평평하게 억지로 다듬어 알 수 없게 만들어 놓고 티격태격 서로의 탓만 늘어 놓지만 퍼즐은 본디 그 모습으로 비웃고만 있다. 한 방울 두 방울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12.04
바람 바람의 시작점 분명 신(神)의 짓궂은 손장난일거야 생사여탈은 한 점으로도 족히 남으려니 계절마저 에돌려 꿈도 좌절도 손끝 하나 이거늘 어찌 순간 방심만을 탓하랴 오래 전 와서는 기억을 깡그리 포식한 바람이 내 바램을 조소(嘲笑)하며 이제사 불어가다니 같이 맞은 바람인데 이 무..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11.28
틀린 그림 찾기 어제와 오늘 도무지 찾을 길 없어 반찬 가짓수라 우겨댄다. 일 년 전과 오늘 언뜻 마누라 바가지가 얇아 보인다. 십 년 전과 오늘 넓어진 이마 뒤로 아이들 배경이 줄어 들었다. 삼 십 년 전과 오늘 바싹 마르고 쪼그라진 꿈이 툭툭 떨어져 있다. 오십 년 전과 오늘 걸어 온 미로 보다 되돌..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8.27
팔월 어느 저녁 날에 아버지 귀가 시간 짜증난 애기 바람 심술 가득 달음박질 해도 늦을 터인데 풀잎은 발로 툭툭 나뭇가지 괜히 쥐 흔들고는 팔을 살살 문지르며 같이 가자 칭얼거린다. 방학 숙제에 지친 아이 빛 바랜 도화지에 큰 붓으로 하늘 그리다 잠들어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 하고 수면을 박찬 겉멋 든 ..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8.08
걱정 아침 눈 뜨며 내일 걱정 한 여름 한파 걱정 맑은 날 비 올까 걱정 쌀 독 채우며 양식 걱정 씨 뿌리며 수확 걱정 핏덩이 놓고 앞 날 걱정 웃으며 울을까 걱정 만나며 헤어질까 걱정 멀쩡한데 아플까 걱정 태어나며 죽을까 걱정 걱정 없어 걱정 걱정 많아 걱정 쌓아 놓은 걱정 썩을까 헌 걱정 버리고 새 걱..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8.01
skid mark 게 눈 감추는 찰라 산더미 같은 생각들 밀려 오더니 마른 번개 소리에 순식간 줄행랑 치고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버렸다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에서도 퍼붓는 장맛비 속에서도 가차없이 짓밟는 타이어 군화 발에도 굴하지 않고 잘도 버텨낸다. 어제도 오늘도 오가며 내가 그어 놓은 처..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7.28
비(雨) .. 널 그리 부르는 것은 많은 이가 빌고 빌어 하나 된 까닭일거야 기다려 비는 눈물 잡으려 비는 눈물 오기를 빌지 않아 싫고도 반가운 것은 몇 줄기에 하얗게 드러난 허기진 농사꾼 그림자였으리라 세상 누군가 비는 마음으로 널 맞았으니 이제 누군가를 위해 빌어야겠지 숯덩이 되도록 빌..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6.23
책을 펴는 이유 문 살에 박힌 ㄱ,ㄴ을 만나 찌그려도 보고 두루 합해 산고(産苦) 끝에 어머니 아버지를 낳았다 우리 집 문 살에 동그라미 사촌도 살지 못하는 것은 배고픔과 무관치 않음을 알기까지 굳이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영희,철수 친구 된 지 불혹을 훌쩍 넘었거늘 아직 그 곳에 맴돌며 떠나.. 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2009.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