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귀가 시간
짜증난 애기 바람
심술 가득
달음박질 해도 늦을 터인데
풀잎은 발로 툭툭
나뭇가지 괜히 쥐 흔들고는
팔을 살살 문지르며
같이 가자 칭얼거린다.
방학 숙제에 지친 아이
빛 바랜 도화지에
큰 붓으로 하늘 그리다 잠들어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 하고
수면을 박찬 겉멋 든 물고기
햇볕에 빠져 몸부림 치더니
비늘마저 낙조(落照)에 익혀
불그스레 먹음직스럽다.
담벼락 틈 새
허기진 땅거미 슬금슬금 거리자
임박한 순찰 시간 알리는
눈치 빠른 동네 개들의 요란스럼도 잠시
분주했던 땅도 하늘도
잠시 입을 닫아버려
모두가 쭈볏쭈볏 눈치만 살피고
시간이 멈춰 버린 곳에는
까마귀 한 마리 정적을 가른다.
팔월 어느 저녁
서산 녘 산마루에
설익은 가을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해 맑은 미소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