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무척 주렸나 보다
발그스레 전희(前戱)도 생략한 채
금새 훌러덩 옷 벗고
요염한 눈 빛으로 삭풍(朔風) 힐껏 보며
일전(一戰)을 불사할 기세다
하기사
오래 된 마누라 처럼
벗던 입던 언제는 관심 보였었나
알 몸 되어 시선 돌리니
그제야 정신 확 돌아 오는가
올 가을은 걸어 온 뒤안길인가 보다
그 언제
싱그러운 신록이
그 언제
화려한 단풍이 있었던가
망각의 계절 옆에
비워진 기억의 빈 상자들만 나뒹굴고
덩그러니 발가벗겨진
볼품 없는 알몸뚱이 하나
올 가을은 선심 쓰기로 작정했나 보다
올 가을만
올 가을만
애써 닮은 척하기로
북망산(北邙山) 미동(微動)에 기대어
전의(戰意)는 고사하고
혹시 또 혹시나
일전(一戰) 생길까 전전긍긍일 뿐
갈림길에 서로 다른 이정표를 보고
이제야
올 가을의 바쁜 걸음을
눈치 채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