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감꽃은 왜 피웠을까?---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인정머리 없이 모질게 괴롭혔던 시어미같이
지난 그 겨울에 대한 반감(反感)이었을 것이라고…
애기 볼같이 토동통한 노란 감꽃이
밤하늘 별보다 더 많이
밤하늘 불꽃보다 더 화사하게 웃음 짓다
별똥별 떨어지듯 바람 타는 수많은 감꽃들은
온 바닥을 다시금 노랗게 물들였으니
그것으로 한(恨)은 충분히 풀렸으리라고…
오월을 서서히 밀어내는 어느 날
시드럭푸드럭한 노오란 빛 여운이 아직 눈에 가득한데
투두둑투두덕
굵은 우박처럼 떨어지는 젖비린내 가득한 애기 감들
이미 떨어져 까맣게 잊혀진 감꽃만큼 떨어져
새파란 양탄자 되어 덧칠을 한다.
마치 주검을 위로나 하듯이…
이럴 거면 애당초 뭣하러 그 많은 감꽃을 왜 피웠을까?
대빗으로 짜증들을 쓸어 모을 즈음
머리 위에 투둑 떨어진 애기 감이 찬웃음을 날리며
‘바닥만 보지 말고 위를 올려보라’ 일침(一針)을 가한다.
지난 그 겨울의 고통
그런 얄팍하고 촌스런 것이 아니었음을…
덤성덤성 남아 매달린 감들은 내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어디 가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와서 가르친 것도 아닌데
나보다 세 곱절 나이 적은 어린 저 감나무는
진작에 철이 들어 번뇌의 고리를 하나씩 끊고는
가을의 해맑은 햇살을 꿈꾸는데
청맹과니보다 못한 아둔한 나는
수많은 가을을 보내고 차가운 겨울 입구 서성이면서도
아직 그 많은 감꽃을 가지마다 허리 휘도록 쪼랑쫄랑 매달고 있다.
왜? 그 많은 감꽃을 피웠어야만 했는지
혹 수많은 감꽃은 어쩌면 쌓고 쌓아 온 전생(前生) 업(業)은 아니었는지
이제라도 피웠고 버렸던 그 이유를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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