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돛과 닻----
배가 항해와 정박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닻과 돛 그리고 노일 것이다.
지금은 배의 추진력을 전기를 이용하기에 바람이나 인력을 요하는 항해를 필요가 없어져 레저용이나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돛이나 노의 존재가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배의 건조 기술이나 항해술의 전문가가 아니니 이런 것들에 대해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한달 전쯤에 예닐곱 아래의 친한 동생이 어느 날 술 한잔을 하다 말고 뜬금없이 테이블 옆에 있는 종이냅킨에 볼펜으로 돛과 닻이란 두 글자를 적더니 “형님이 이 주제로 글을 쓰면 어떨까 하여 드릴 테니 한 번 써 보세요”라고 건네 주는데 엉겁결에 받아 넣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난감하였다.
먼저 닻과 돛이란 것에 대해 글을 쓰기 된 계기가 이 동생 때문이니 소개하자면 이름은 전직 대통령과 같은 김대중으로 간혹 놀림 삼아 각하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 나이는 7-8년 후배이지만 흔히 말하는 팔방미인으로 통하여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에다 다 방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백과사전 같은 녀석이다.
나이에 비해 10살 정도는 쉽게 꺾어도 믿을 상당히 동안(童顔)으로 얼핏 눈매만 보면 첫 느낌은 다소 악도리같이 보이지만 하는 언행은 내미손 같은 면도 있고 유머와 재치에다 애교도 많다 또 나이에 걸 맞지 않게 마음은 허허바다 같이 이해심도 크며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군내로 도배된 선술집에 걸쭉한 막걸리에 고소하고 향긋한 파전을 먹었지만 뒤돌아서면 품격 있는 레스토랑 스카이라운지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고 나온 듯한 느낌을 한껏 담아 주는 미스터리 면이 있는 녀석이다.
그리고 글 재주도 있어 가끔 적은 시나 글을 보여주면 때로는 혹독한 심사 평(?)을 아끼지 않는 미운 구석을 찾아 보기 힘든 그런 걸출한 놈이었다.
이 동생에게 주제를 건네 받고 고민한 이유는 여태 누구에게 주제를 받아 글을 쓰는 전문 글쟁이도 아니고 평소에 그저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시나 글을 써왔기에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 어떤 방향으로 적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한번도 이렇게 부탁 받은 일도 없었고 늘 어떤 주제에 대해 먼저 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을
경우에만 편하게 글을 적어 왔기에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본론과 결론을 내려야 할 지에 대하
여 한편으로는 막연하였다.
하기야 지금까지 글을 쓸 때는 어떤 본론과 결론 부분의 핵심부분이 강한 느낌으로 다가 왔을
때만 시작을 했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글을 완성하기까지 그리 어려움을 없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쓰려고 하니 시작하기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필(feel)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닻과 돛이란 주제의 본론부분에 해당하는 것
이 마음으로 다가 오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영감이라 해야 할까 닻과 돛이라는 단어가 스스로에게 강하게 끌려오는 것이 없어 그냥 모른 척 지나칠까 생각하며 보름을 넘겼지만 잊은 것 같은데도 자꾸만 두 단어가 떠올라 나름대로 어떻게 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었다. 이렇듯 특별히 와 마음에 닿는 것도 없어 ‘에이 굳이 이 것 때문에 신경 쓸 것이 뭐람 쓰게 되면 쓰고 아니면 말자’하며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억지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굳이 매달릴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여기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준 주제에 대해 글을 적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기에 머리 속에만 넣고 그냥 지냈었다
그렇게 잊은 듯 만 듯 지나던 어느 술 한잔을 하고 방에 누웠는데 갑자기 두 단어와 연결된 내 삶의 어떤 부분과 진하게 오버랩(overlap) 되어 본론 부분과 결론 부분의 핵심들이 떠올랐다. 지금껏 살아오며 닻과 돛이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길을 걸어 온 흔적 가운데 그 한 부분을 적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닻은 필요에 의해 배가 항구에 정박하기에 사용하는 것이고 돛은 각종 천을 매달아 바람을 이용하여 항해에 쓰인다는 것은 원론적인 해석일 것이다.
닻을 내린다 돛을 올린다는 것의 닻과 돛 두 단어가 내 마음에 우선 와 닿아 느낌은 정박에 필요한 닻은 안정과 휴식이며 항해에 필요한 닻은 도전과 전진이라는 상반되면서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누구든 인생이란 배를 향해 하며 언제 닻을 내려야 할지 언제 돛을 올려야 할지 기로에서 참으로 선택으로 인한 갈등과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 선택이 인생 길의 좌표를 완전히 바꿔야 할 정도로 라면 아마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보편적으로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는 거센 풍랑을 무서워하지 않고 돛을 올려 험한 파도를 헤치며 살아 왔을 것이고 또 그럴 용기와 힘이 있을 때이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가정의 안정을 위해 무리한 항해를 시도 하기 보다는 비교적 닻을 내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해도 대체적으로 그러할 것이다.
이렇듯 돛과 닻은 인생 항해에 있어서 어느 쪽을 택할지 늘 선택의 순간으로 다가 오며 어떤
것을 택하던 그 몫은 순전히 자신의 결정이지만 잘못된 결과에 대해 누구를 탓할 것도 없고 반
드시 책임을 면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내 삶에 있어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되었던 닻과 돛에 대한 굵직한 사건이 있었으니 먼저 닻에 대한 것이다. 스무 살 때쯤 첫 직장으로 포항제철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포항제철이란 회사는 지금의 삼성,현대,금성(현 LG) 이상의 인지도가 높은 곳으로 포항제철 직원이라는 노란 쇳물 색깔의 제복을 입었다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프라이드는 대단하였다.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에 포항시에서는 신분증 자체가 신용카드 이상의 효력을 발휘할 정도로 장래가 보장된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는 그런 회사였으며 또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딸을 그저 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어느 좌석에서 가서도 ‘내 아들은 포항제철을 다녀’라고 자식 자랑을 해도 먹혀 들어가는 이런 회사를 그만 둔 다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정말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렇게 성공한 직장인으로는 평생 편히 안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었겠지만 나의 꿈은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서는 것이 너무나 확고하였다. 그렇지만 포항제철이란 곳은 애석하게도 그 꿈을 조
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곳은 분명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며 야간 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더욱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한 갈망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편입하여 반드시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더욱더 세차게 밀려왔다.
그런데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의 금전적인 부분 보다는 어쩔 수 없이 향후 5여 년간 특례 보충역으로 군 복무를 대신 근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꿈을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사표를 내고 나면 생계에 대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당장 수입의 일정부분을 시골에 송
금도 해야만 했고 나름대로 지금 상황을 자랑스러워 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는
터라 절대 끊어지지 않을 굵직한 동아줄에 깊숙하게 박힌 닻을 빼 올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판단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꿈과 직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에는 병역 의무를 다 마치기 까지 당장의 5년이란 시간
은 너무나 멀게 느껴져 이대로 정박한다면 영원히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물밀 듯 밀려와 이로 인한 마음의 갈등은 갈수록 심하였다.
하지만 끝내 돛을 올리기로 선택하여 사표를 내고 군에 가기로 결정하기까지 사실 몇 달 동안
날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와서 잠은커녕 형산 강 둑에 앉아 땡볕 아래에 종일토록 이런저런 생각들을 참 많이도 했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극구 만류했지만 어떤 풍랑도 헤쳐나가리 라며 꿈을 향해 힘차게 닻의 천을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올리지 않아도 될 돛을 올려 그 좋다는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군 3년을 사서 고생하였으며 끝내 교사의 꿈도 이루지 못하였다. 이것이 내 삶의 오래도록 남아 있는 닻을 올린 사건이었다.
돛에 대한 것은 아마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약간의 여유 돈이 있어 주식의 주자(字)도 모르면서 주변에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주식에 투자한 일이 있었다.
뻔한 스토리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충 찍어 선택하여 산 주식이 상한가를 몇 번 치면서 공돈이 굴러 들어왔고 뭣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돈을 쉽게 손에 거머쥔 것이 화근이었다.
이렇게 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판단 되어 전문지식도 없이 묻지마 식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결국 원금은 고사하고 반 토막에 또 반 토막 마지막에는 집 사람 몰래 적금도 해약하여 본전을 찾고자 발악을 하며 하루에도 여기저기를 수없이 갈아 탔으나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고 남은 것은 철저하게 망가진 황폐된 몸과 마음뿐이었다.
막바지 무렵에는 주행하다 파란 신호등과 빨간 신호등이 상,하한가로 보일 정도였으니 그때서야 ‘내가 정말이지 지금 미친 짓을 하고 있구나’ 하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결과에 대한 댓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결국 이 사실을 집 사람이 알게 되었고 금전적 손실 보다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적금 해약 등
거짓말을 했다는 부분 때문에 이혼까지 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하루하루 살얼음 판을 걷는 듯한 생활하던 그 무렵 알고 있던 지인이 성업 중이었던 중국집을 사정상 내 놓을 수 밖에 없는데 좋은 조건으로 줄 테니 인수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집 사람으로부터 왔지만 고민 또 고민을 하다가 결국 포기를 하였다.
주식으로 인해 대미지가 너무나 큰 탓에 집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빌려 여기에 모든 것을 올인(all in)하여 만회할 기회를 갖자고 수없이 반 협박처럼 말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만약 혼자의 몸이었으면 분명 인수했을 것이나 더 이상 망가지면 가정이란 울타리가 여지 없이 풍자박산 날 것 만 같은 알량한 가장의 마지만 두려움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나 역시도 주식으로 인한 실수를 만회코자 돛을 올려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승부수를 던지려고 많이도 망설였지만 최종적으로 선택의 기로에서 돛을 올릴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집사람에게는 가진 것도 지키지 못하며 풍랑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가장이란 꼬리표를 달게 되었고 형편이 힘들 때마다 몇 년 동안은 듣기 거북한 이런 말을 수시로 들어야만 했다.
간혹 지금도 성업중인 그 중국집 옆을 지나 갈 때면 만약 그 때 이 가게를 인수 했더라면 지금보다 형편이 더 나아졌을까 혹은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고 생각을 하며 혼자 씁쓰레한 웃음을 짓고는 한다.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 가능하다면 실패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마는 인생은 도박이란 말도 있듯이 각자의 배를 항해를 하며 돛을 내려야 할 때와 닻을 올려야 할 때를 현명하게 판단을 해야 성공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배를 항해하거나 정박해 오면서 지나온 뱃길을 뒤돌아 보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한들 돌이킬 수도 없지만 앞으로도 또 어떠한 선택의 순간이 와서 그 어느 쪽의 어떤 선택을 한들 그 또한 내가 남긴 항해길이리라
이제는 항해와 정박 즉 도전과 안정 어느 쪽을 선택할 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현명하게 판단할 나이이지만 항해할 힘이 없어 무리하게 돛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기야 지금은 닻과 돛이란 선택을 말하기 전에 배가 낡아 군데군데 부서지고 물이 스며드니 가라 앉을 배에 무직한 닻도 튼튼하게 솟은 돛도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쨌던 크든 작든 선택은 살아가며 매 순간 다가 오지만 이제는 부러진 돛대와 낡아 곧 끊어 질 듯한 낡은 닻 줄에 의지한 채 작은 풍랑에도 일렁이니 선택이란 단어의 의미도 내게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춰야 할 때 > 돌 위에 앉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이자안과 마누우 (0) | 2014.07.04 |
---|---|
관점(觀點)의 차이 (0) | 2014.06.30 |
“밥 한 그릇과 술 한잔” (0) | 2014.02.17 |
김장을 하면서 (0) | 2013.12.17 |
화장실에서의 뜨거운 손길 (0) | 201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