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과 술 한잔”
흔히들 ‘밥 한 그릇 먹으러 가자’ 혹은 ‘술 한 잔 하러 가자’ 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그릇, 한잔이란 단어의 관형사인 한(하나)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그것이 두 그릇이든 반 그릇이든 한잔이든 열 잔이든 ‘밥을 먹자’는 ‘술을 한잔 하자’는 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한 그릇!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나에게는 밥의 경우 꼭 한 그릇이라는 말이 늘 귀에 거슬리는 것은 한 그릇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풍기는 뉘앙스 때문이다.
그냥 ‘밥 먹자’,‘점심 혹은 저녁을 먹자’ 라든가 아니면 ‘식사를 하자’라고 하든가 이런 좋은 말들도 있는데 굳이 한 그릇이란 단어가 들어감으로써 양적(量的)인 측면을 부각시켜 언제 들어도 삶의 질적(質的) 측면 보다는 본능적인 생존에 관한 부분이 먼저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한 단어로 인해 자연스레 동물적인 감정 즉 생존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한 인간으로 조금은 원초적인 면을 자극하는 서글픈 현실을 순간적으로 되돌아 보게 된다.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생존의 마지막 끝자락인 본능적인 것에 대한 것이 묻어 있기에 어쩌면 꼭 밥을 먹으면서 꼭 단위(수량)을 명시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한끼,한술 등 어떻게 말을 하든 수량을 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말은 모두 같은 느낌으로 들린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말을 하거나 듣거나 했을 때 거부감을 토로하거나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단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것은 아무런 뜻 없이 의례적으로 혹은 인사치레도 건네는 말이니 굳이 그 의미를 따져서 왜 그런 말을 사용할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한마디로 나름대로 기분 좋아야 할 식사 시간을 한 그릇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 인간 본질의 밑바닥을 박박 긁어대는 것 같아 그리 달갑지 않는 말로 들리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별 뜻 없이 사용하는 이면을 되짚어 보면 여러 재미있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지금까지 가졌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밥 한 그릇에는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정서와 현상들이 혼재된 것으로 그 속에는 약간은 형식적인 측면과 시제(時制)에 대한 불확실성 등 몇 가지의 뜻이 어우러져 있는 것 같다.
가령
첫째: ’한 그릇(한끼, 한술) 하세요’, ’한 그릇 하고 가시지요’
둘째: ‘이따 밥이나 한 그릇 먹자’, ‘언제 밥 한 그릇 합시다’
모두 밥을 먹자는 인사말의 범주에 속하지만 첫 번째의 경우에는 현재의 행위 중에 다소 타자 중심적이며 두 번째의 경우는 얼마 후 혹은 좀 더 먼 미래적 행위에 대한 인사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확실하게 지금 당장 함께 식사를 할 경우에는 그냥 ‘밥 먹자’ 혹은 ‘밥 먹으러 가자’고 하지 굳이 한 그릇이란 단어를 집어 넣어 ‘한 그릇 먹자’라고는 잘 사용 않는 것 같다.
왜 그럴까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그냥 ‘밥 먹자’는 서로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지금 당장 이뤄질 명확한 현재 상황이며 분명 자기 중심적이니 다소 막연한 의미를 갖는 ‘한 그릇’ 이란 단어를 굳이 넣게 되면 오히려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그릇’이란 단어가 들어가면서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것은 ‘밥 한 그릇 먹자’는 서로 대면한 상태이건 아니건 불확실성과 불 특정일의 미래(시제)에 관한 부분의 뜻이 내포되어 있기에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느낌을 은연 중에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이런 말을 사용하면서 이런 사용상의 미묘한 차이를 깊이 생각해 가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으니 누구나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며 그 뉘앙스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배어지고 굳어진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밥 한 그릇’에는 확실치 않는 다소 막연함이 있어 누구나 그냥 가볍게 툭 던질 수 있는 것으로 한마디로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가듯 그냥 해 보는 말인 것 같다.
꼭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이며 그렇게 해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꼭 하지 않는다 해서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고 책임도 의무도 따르지 않으며 시간적으로도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또 딱히 정하지 않은 가까운 미래의 날에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시쳇말로 강제성이 없어 여건이 되면 하는 것이고 안되면 할 수 없는 우리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정서로 우리 문화를 이해 하지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이면 실없는 사람이나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으로 딱 오해하게 십상인 말인 것이다.
그러니까 ‘한 그릇 하지’ ‘언제 밥 한 그릇하자’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말은 꼭 하라는 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한다는 말도 안 하겠다는 말도 아닌 어쩌면 다소 애매모호한 말이긴 하지만 우린 잘 알아서 판단한다.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불확실한 날의 약속이지만 누구도 그런 인사말을 듣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고 하든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해서 야속하다 말하지 않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하는 인사말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을 비중 있게 받아들여 머리 속에 각인하는 사람도 없지만 괜히 이를 정말로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렇듯 한 그릇이란 단어는 다소 탄력적인 유연성을 가진 것으로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과 그리 의무감이 따르지 않으니 어느 누구나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말인 것이며 듣는 이도 그렇게 가볍게 듣는 것이다.
어떻게 ‘밥 한 그릇 먹자’라는 인사말이 여러 의미를 내포하며 언제부터 정착되고 통용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한 그릇이란 단어가 스스럼 없이 사용된 이면에는 미묘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 즉 그 속에는 우리의 정(精) 혹은 우리 사회의 정서가 스며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다.
한국인의 정 아니 우리의 정(精)이라는 단어를 아마 다른 나라로 번역하기에는 많은 수식어를 필요로 해야 할 정도로 설명이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한 마디로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간단히 정의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자체가 정이며 정 자체가 한국인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정(精)이라는 것은 반듯하게 끊고 맺는 것이 아니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것이기에 어쩌면 우리네 삶은 정으로 시작하여 정으로 마무리하는 것 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밥 한 그릇,술 한잔에는 그 단위 보다는 그 이상의 뜻 즉 우리의 정이 흠뻑 녹아 스며들어 있으니 굳이 어떻게 사용한 들 굳이 그 의미나 결과에 대해 타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술 한잔 하자’에도 밥 한 그릇과 같이 한(하나)이라는 양적(量的)인 의미가 똑 같이 들어가는데 불구하고 왜 ‘술 한잔 하자’에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다.
밥과 술이 갖고 있는 각각의 특성의 차이인 것이다. 즉 밥은 생존에 꼭 필요한 주식인 것이고 술은 기호식품이기에 본능적인 것을 자극하지 않으니 그 둘의 차이점 때문에 술 한잔 하자고 하는 말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들을 수 있고 나 또한 쉽게 그렇게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무의식 속에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을 굳이 혼자서 까탈스레 이러니 저러니 한다기 보다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느낌으로 들리다 보니 왜 그럴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정리했을 뿐이다.
어느 누가 양면성을 가진 우리의 정이란 것을 긍정과 부정적 측면으로 나눠 칼로 두부 자르듯 구분하며 살아가야 한다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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