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자안과 마누우---
사무실이 있는 동네는 대구 도심지에서 조금 외각 지이고 빈촌이라 그런지 유난히 외국인 즉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곳 보다 집세가 저렴해서 이 곳에서 정착하는 것 같다.
사무실 인근에도 두 집 건너 2층 주택의 아래층에 방 두 칸을 빌려 예닐곱 명의 파키스탄 젊은 친구들이 합숙을 하듯 살고 있는데 직업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가끔 가서 보면 남자들끼리만 있어서 그런지 너무 지저분하고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친구들이 있는 곳을 가끔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굴러다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폐차직전 승용차가 한대 있는데 사무실 주변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해 놓으니 불편할 때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창고의 물건을 수시로 입출고해야 하는 관계로 차량 출입이 잦은데 주차공간만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 없이 대충 주차해 놓고는 사라지니 전화도 안되어 난감할 때도 많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살고 있는 집을 알고 있으니 당장 답답하고 아쉬운 내가 수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인연이라고 자주 보게 되니 얼굴도 알게 되고 때로는 이런 저런 이야기나 농담도 하는 그런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중 말리카란 친구는 서른 초반 정도인데 가끔 팩스라든지 전화를 사용하게 해 달라며 사무실까지 찾아 오곤 하였다.
그러다 삼사여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차도 그 친구들도 보이질 않아 모두 이사를 간줄 알았는데 말리카 혼자 남고 함께 있던 친구들과는 따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리카는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여 웬만한 우리말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니 대화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 보니 결혼하여 부인과 애들 둘이 있으며 중고 건설장비를 한국에서 매입한 뒤 파키스탄에 수출하는 무역을 하는 친구로 나름대로 제법 성공하여 그 나라에서는 상류층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말리카는 마음씀씀이도 착한 것 같았다. 혼자 살면서부터는 사촌 동생이나 가까운 친지들을 고국에서 불러들여 돈벌이 방법을 가르치고는 독립시키는 것을 보니 말리카 집안에서는 이 친구에게 거는 기대도 큰 것 같았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 같이 부모 형제간이나 친지들을 생각하여 가족을 챙기는 것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가을 혼자 남은 말리카도 이사를 갔는지 한달 넘도록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 갑자기 창고 옆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고 그간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사업도 안정되었고 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이 곳에 정착해 살려고 파키스탄에 가서 여러 가지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하였다.
이들 가족은 무슬림으로 말리카는 180센티 정도의 훤칠한 키에 미남형의 얼굴이었고 부인은 몸집이 말리카의 1.5배나 되는 육중하고 얼굴은 평범하였는데 가끔 이슬람 여성의 복장인 차도르를 착용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남매로 오빠는 헤이자안으로 7살이며 사내아이였고 동생은 마누우로 5살로 여식 아이였다.
이 남매는 머리도 자그마한 데다가 얼굴을 보면 눈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슴 눈같이 크고 흰자위는 우유 빛깔보다 희었으며 눈동자는 먹물보다 검은 색으로 참 예쁘고 순박한 눈을 가졌다.
부인은 종교적인 이유에서인지 이 곳이 낯설어서인지 외부인과는 접촉을 피하려는 듯 간혹 밖에 나오면 바삐 집으로 들어가거나 가급적 외출을 삼가 하려 눈치가 역력하였는데 특히 애들과도 바깥에서 노는 모습은커녕 나들이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침에 우유로 어떤 음식을 해 먹는지는 모르겠으나 헤이자안이 수시로 1000미리 리터의 우유를 서너 개씩 사오는데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낑낑거리며 들고 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끔은 집까지 들고 가주곤 하였는데 아이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헤이자안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유로 외출을 꺼려하는 것 같았다.
이들 남매는 다소 추운 날씨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창고 주변이나 주차장에서 놀고는 했는데 유심히 살펴 보니 파키스탄이란 나라가 남아 선호사상이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그 이상인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남성 우대 사상이라 표현이 맞을는지도 모르겠다.
헤이자안의 옷차림은 항상 깨끗한 새 옷에 깔끔하였고 반면 마누우는 다소 꾀죄죄한 모습에 아무렇게나 입힌 듯 했고 코에는 언제나 콧물이 마늘 날이 없었으며 또 헤이자안에게는 그 나라에서는 감히 갖지도 못했을 무선 장난감 자동차를 두 대씩이나 갖고 놀면서 마누우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계속 지켜 봤지만 마누우 손에 단 한 번도 어떤 장남감이든 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러니 늘 마누우는 헤이자안이 갖고 있는 여러 장난감들을 부러운 눈치로 바라보며 같이 만지고 놀고 싶었지만 헤이자안은 허락하지 않았고 늘 헤이자안 옆을 징징거리며 따라다녔다. 이런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같은 자식이라도 키울 때부터 남녀의 차별이 무척 심해 보였다.
이 남매가 처음 한 두 번은 나를 보고 낯설어 하더니 몇 번 과자나 빵을 주었더니 그 이 후에는 항상 무엇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인지 아예 애들이 내게 먼저 다가와 장난을 걸고는 하였다.
얘들과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주차장에서 공도 차고 야구도 하여 자주 놀았고 헤이자안은 자전거 타는 것을 아주 좋아 헸는데 온 동네를 제 집인 냥 쏘다녔고 혹 고장이 나면 가끔 고쳐주기도 하였다. 물론 과자나 사탕 빵 등을 일부러 챙겨 주기도 하고 그것 마저 없으면 사먹으라고 가끔 천원씩 용돈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만나게 되면 으레 무엇을 준다고 생각했었는지 주변을 맴돌았고 때로는 일부러 못 본척하며 애써 눈길을 피하면 주의를 끌려고 공을 내 주변으로 던지거나 하면 장난이었지만 괜히 그랬나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선 타국에 와서 놀아 줄 친구도 없고 남매는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늘 둘이 붙어서 다니는 모습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가급적 남매에게 웃으며 잘 대해주었다.
말리카도 남매에게 내가 하는 것을 애들에게 들었는지 항상 만나면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고 어릴 적 생각도 나고 해서 그저 보기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남매들과 문제가 생긴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시작되었다.
남매가 늦가을에 와서 이듬해 봄이 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생길 이유도 없었는데 봄이 되어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창고 옆 딸린 두어 평 정도의 화단이 있는데 그 곳에는 감나무 한 그루와 향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빈 공간에는 작년에 심어 자연적으로 뿌려져 있는 분꽃이나 금잔화,금계국 등 꽃씨들이 봄이 되어 연 초록 얼굴을 뾰족뾰족 내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남매가 마땅히 놀 곳이 없으므로 주변 공사장의 여러 쓰레기들을 가지고 화단에 들어가 흙 장난을 하며 콘크리트 주자창 안쪽으로 온 통 흙을 마구 뿌려놓기도 하였고 화단 여기 저기 흙을 마구 파 헤치니 막 싹을 틔우던 새싹이 모조리 죽는 것은 물론이오 놀다가 버리고 간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어 남매를 만나면 야단을 치거나 아버지인 말리카에게 말하려고 했으나
웬일인지 매일 보이든 애들도 자주 보든 말리카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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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며칠 후 퇴근을 하려는데 화단에서 남매가 잡다한 것을 들고 와 흙 장난 하는 모습이 포착이 되었다. 한마디로 딱 걸린 것이다.
나를 먼저 본 애들은 먼저 오랜 만에 보는 내가 반가웠는지 활짝 웃음을 보냈지만 애들 장난으로 벼르고 있는 터라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다짜고짜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여기서 놀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물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애들은 무척 당황해 하였다.
큰소리로 “헤이자안 마누우 하지마” 하며 파헤쳐 놓은 화단 흙을 발로 이리저리 다시 메우며 화를 냈지만 남매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였고 당연히 내게 무언가 먹을 것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보자마자 화를 내고 나가라고 소리치니 쭈뼛쭈뼛하며 눈치를 보며 뒷걸음 치는데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갑작스런 태도에 놀랐는지 얼굴에는 잔뜩 겁 먹은 모습과 눈에는 눈물이 조금 비치었다.
남매는 돌연한 나의 이런 행동에 당황해 하며 계속 뒤돌아 나를 쳐다 보고 또 쳐다 보며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체 집 쪽으로 향해 돌아 갔다
그렇게 돌아서는 남매의 이런 모습을 보니 비록 화단은 또 엉망이 되었지만 한창 개구쟁이같이 놀고 싶은 그 나이에 흙 장난 좀 한 것을 가지고 너무 심하고 야단을 친 것 같아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계속 미안한 마음 한 켠에 걸려 있었는데 며칠 후 심부름을 가는지 남매가
다정히 손을 잡고 주차장 옆을 지나가며 나를 빤히 보고도 평소와는 달리 웃지도 않고 내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괜히 측은한 마음에 헤이자안을 불러 동생과 나눠 쓰라고 용돈을 주었더니 그제야 환히 웃으며 내가 손을 흔드니 같이 손을 몇 번이고 흔들며 무슨 말을 나누는지 몇 번이고 뒤돌아 나를 보고는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럼없이 다가 왔고 예전과 다름없이 남매들과 같이 장난도 치며 잘 지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을 하려는데 남매가 또 인근에서 주워 온듯한 나무 막대기와 플라스틱 통 등을 들고 와서는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헤이자안 ‘하고 화난 목소리로 크게 불렀더니 오히려 흙 한 줌 정도를 내 쪽으로 향해 뿌리는 듯한 시늉을 하더니 반갑다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 이 아이들이 전번에 왜 화가 났는지를 정말 이해를 하지 못했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화를 내기 보다는 알아 들을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희가 지금 이렇게 하면 막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새싹을 죽는다는 것을 바디 랭귀지를 동원하여 최대한 설명(물론 다소 화난 목소리로) 하였고 확실히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남매에게 알아 듣게끔 설명은 했지만 확실히 알아 들었는지 확신이 없었고 만약 이해를 못했다면 앞으로 또 재발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해서 마침 다음날 말리카가 지나가기에 그간의 자초지종을 말하고 덧붙여 아이들이 알고 한 것도 아니고 마땅히 놀 것이 없어 장난 한 것이었는데 심하게 야단을 친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더니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애들에게 주의를 주겠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는 그 이 후로 만나기만 하면 그 때마다 애들이 화단에 와서 장난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이후로 남매는 여느 때와 같이 주변에서 놀기는 하였지만 화단에서 흙 장난은 절대 하지 않으니 자연 나와의 긴장(?) 관계도 사라지고 처음과 같이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6월이라 화단에 꽃들로 만발하니 아무리 남매가 철은 없지만 그때 왜 그랬는지 짐작은 했으리라 생각을 해 본다.
이 남매에게 더 연민이 가는 것은 사실 어릴 적 엿 공장을 하며 부유하게 살던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이유는 친구 집은 모든 것이 풍족하기도 했지만 친구 아버지께서 가끔 용돈을 주셨고 이 남매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그 때 나의 모습과 어릴 적 추억이 언뜻언뜻 묻어 있어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벌써 남매가 이 곳에 온 지도 1여 년이 되어 가는데 화단에는 서로서로 화사한 얼굴을 자랑하려 활짝 핀 금잔화,채송화,금계국,분꽃과 같이 맑고 밝게 자랐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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