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멈춰야 할 때/돌 위에 앉아 ...2

추석 떡집 송편 만들기

헤세드다 2016. 10. 13. 10:33




-- 추석 떡집 송편 만들기--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향수에 젖은 발걸음을 고향으로 재촉하기보다는 그 이틀 전 떡집으로 향한다. 떡을 사기 위함도 아닌 시장통에서 친구가 운영하는 떡집에 송편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러 가기 위해서인데 올해로 근 십 년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요즘에는 가정에서 떡을 직접 만드는 집도 거의 없거니와 추석에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차례상에 올릴 송편을 만드는 풍경도 보기 드문 실정이다. 가까운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 모두가 명철 음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뺏겨가며 힘들게 송편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추석에는 송편을 찾는 손님이 많기도 하지만 아무리 떡집이라 해도 다른 떡보다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몇 가마(80Kg)나 되는 많은 양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떡집에서 송편을 만드는 순서야 여느 가정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다만 그 대부분을 기계로 대신한다는 것뿐이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큰 고무대야에 쌀을 불려 놓고 두어 시간 지나면 물이 잘 빠지는 플라스틱 소쿠리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일정량을 퍼담고 물을 뺀 다음 제분기(製粉機:빻는 기계)에 위에 올려놓은 뒤 소금(동일량)을 조금 넣고는 기계를 돌린다.


제분기에서 두 번 돌린 쌀가루를 물을 넣고 반죽을 하여 커다란 노각(늙은 오이) 모양같이 덩어리로 만든 후 송편기 옆에 쌓아 놓는다. 그다음은 송편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공정인 송편기를 돌리는 작업으로 두 개의 투입구가 있는데 한쪽은 쌀가루 반죽 또 한쪽은 고물(주로 깨고물)을 넣는 곳이 있다. 준비가 완료되어 기계 스위치를 작동하면 아래 회전판에는 운동회 때 썼던 오재미 모양 같이 고물을 품은 쌀 반죽이 톡톡 떨어진다. 송편 모양이 갖춰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오와 열을 맞춰 사각 쟁반에 가득 채워놓으면 찜솥으로 향한다.

찜솥에 열두어 판 정도의 사각 쟁반이 가득 채워지면 문을 닫고 수증기를 공급하여 30여분 정도 찐다. 이렇게 찐 송편은 밖에 내어놓고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표면에 참기름을 바르면서 대형 선풍기를 사용하여 가능한 빨리 식힌다. 그것은 계속 송편이 쪄 나오므로 공간이 협소하니 서둘러 포장하여 쌓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식혀진 송편은 저울을 이용하여 삼천 원 오천 원 만원 단위로 담아 비닐 포장을 하여 쌓아놓으면 비로소 끝이 난다.


이처럼 제분기, 반죽, 송편기, 찜솥, 포장공정 다섯 명의 필수인원과 공정과 공정을 이리저리 오가며 연결해 주는 보조인원 두어 명이 있어야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날이 날인 만큼 추석을 이틀 앞둔 터라 다를 귀향 준비나 차례상 준비로 누구나 바쁘기 때문에 늘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좁은 가게 안에 여러 명의 인원이 분주히 왔다갔다하니 시장통의 떡집 안은 또 다른 시장통이 되고 만다. 이렇게 송편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힘이 들어가는 일은 늘 내가 담당하는 반죽이며 상당한 숙련을 요구하는 송편 모양내는 작업은 언제나 떡집 친구의 몫이다.


반죽이란 것이 얼핏 보기에는 그냥 손으로 주무르고 뭉치면 간단히 될 것처럼 쉽게 보이지만 쌀가루를 치대고 뭉치면서 손가락과 어깨가 아플 정도로 상당히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 무조건 힘으로만 하면 이내 지치므로 뭉치는 요령과 그때그때마다 물을 얼마나 적절히 붓느냐에 따라 소요되는 힘과 시간이 많이 차이가 난다. 게다가 수십 통을 반죽해야 하니 체력 안배도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반죽을 하기 위해서는 쌀가루를 빻아 놓은 대야에 일정한 양의 물을 미리 붓고 반죽을 시작하지만 빻는 쌀의 양이 일정하다고 해서 늘 같은 양의 물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쌀을 불리는 시간과 소쿠리에서 퍼담아 저울질할 때 물을 빼는 양이 조금씩 틀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죽하기 전 손으로 먼저 만져보고 느낌으로 물을 더 넣기도 빼기도 한다. 그런데 반죽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질게 하는 것이 힘이 덜 들어가 훨씬 수월하지만 조금만 질게 되면 다음 공정인 송편기의 회전기 속에 달라붙어 동그랗게 나오질 않고 축축 흘러내려버리고 만다. 그러면 쌀 반죽이 터져 고물이 밖으로 빠져나오므로 이 질기 조절을 아주 잘해야 한다. 쌀 반죽은 질거나 되어도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송편기에 나오면서 고물이 터진 반죽은 아까워도 어쩔 수없이 그대로 버려야 한다. 또 반대로 물을 적게 넣으면 뭉치는 과정에서 손가락과 어깨에 무척 힘이 들어가니 물 조절이 그만치 중요한 것이다.


숙련을 요하는 송편 모양내기는 옆에서 보면 아주 편해 보인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떨어지는 오재미 모양(고물이 들어간 쌀 반죽)을 손에 쥐고 살짝 눌러 손가락 모양을 찍어 쟁반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니 아주 쉽고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편해 보이는 이 일을 하려고 송편기 옆에 앉아 몇 번이고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분당 나오는 개수가 만만치 않으니 재빠른 손놀림이 필요한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회전판에 쌓여 금방 뭉쳐버리니 수시로 기계 스위치를 껐다켰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빨리빨리 송편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오리려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매년 추석이면 송편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것은 그냥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10년이 조금 지난 일이었다. 오전 열 시쯤인가 한참 근무 중에 이 친구의 막내딸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받자마자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 어떡해요 엄마가 기계에 손을 다쳐 지금 119에 실려갔어요”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울면서 말하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계속 울기만 하니 곧장 차를 몰고 떡집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병원에 실려간 뒤라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떡을 만들다 회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사고로 결국 왼손을 절단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 이후 추석에는 송편 만드는 일을 도와주러 가게 되었다. 친구는 떡집을 운영하며 위로 사내와 아래에 딸인 남매가 있다. 남다른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당시 교리교사(성당)를 할 때 그 친구 막내딸이 중학교 1학년으로 제자였기 때문에 각별히 더 정이 갈 수밖에 없다.


벌써 이 아이들이 어느새 20대 중, 후반이 되었고 둘은 안동에서 큰애는 직장생활을 막내딸은 안동 모 고등학교의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 남매를 추석에는 늘 만나지만 참으로 대견한 것은 아직 결혼 전이라 명절에 고향에 왔으니 만날 친구도 많고 쉬고도 싶을 텐데 오자마자 가게로 와서 새벽까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가게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다친 어머니의 한쪽 팔 대신 몇 사람의 몫을 한마디 불평 않고 묵묵히 하는 것을 지켜보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며 찜솥 수증기 같은 뜨거움이 짠하게 밀려오기도 한다. 또 친구는 다소 내성적인데 비해 호방한 성격의 부인은 불편한 손으로 이 일 저 일을 분주히 거들며 총감독마냥 큰 목소리로 전 공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연신 미안함과 고마운 인사를 수시로 달고 다닌다.


내년 추석이면 또 이 친구 떡집으로 발걸음을 향하겠지만 언제나 금방 만든 찰떡같이 쫀득쫀득한 남다른 가족애와 열정으로 가득한 훈훈함을 하나 가득 안고 늦은 발걸음을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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