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멈춰야 할 때/돌 위에 앉아 ...2

폐업(廢業) 할 수 없는 공장

헤세드다 2015. 12. 30. 10:40




 


 


--폐업(廢業) 할 수 없는 공장--

            (2016 18 MBC 여성시대 방송 원고)


 

설마 설마 했었는데 장마철 길섶 수풀 같이 무성했던 소문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올여름의 막바지 더위가 몸부림을 칠 무렵 공단에서 외형 규모가 세 손가락 안에 손꼽던 회사가 누적된 적자에 더 이상 공장 가동이 힘들어 매각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던 것은 비록 섬유산업이 안팎의 여러 악재로 수년째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도 이 회사만큼은 재정상태가 건실하기에 끝까지 버티리라는 나름대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 공단 전체가 가동을 멈출 것이다’며 4-5년 전까지만 해도 우스개 삼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힘든 시기를 버티어왔다.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니 그것으로 자위(自慰)하며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었고 그 희망의 끈을 놓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아니 이럴 수는 없다고 굳게 믿었던 일이 닥치고 만 것이다. 소문은 소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끝내 금년(2015) 12월 말로 회사를 폐업하기로 확정이 되었고 공장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다른 아이템(item)의 공장이 들어선다고 하니 고용승계 또한 이뤄질 수 없는 최악의 경우가 되어 버렸다.


 이 회사는 주 거래처로 우리 회사의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니 어쩔 수 없이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계절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차디찬 겨울로 치닫는데 마음까지 굳어 더욱 춥게 만든다. 주 거래처이니 납품관계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 회사에 들러야만 했다. 초기에 매각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도 사원들은 그리 동요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규모가 있는 회사이니 뭔가 대책이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일부는 매각하더라도 축소하여 다른 장소에서 작은 공장이라도 가동하지 않겠냐 혹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매각이 되더라도 동종업종에서 인수하여 최소한 직원들 고용만큼은 반드시 승계할 것이다. 하며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다. 그러니 다들 크게 염려하는 눈빛은 아니었었다.


 하지만 갈수록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실치 않는 여러 설들만 난무하였다. 처음에는 대충 알만한 동종(同種) 회사에서 인수했다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니 매각을 포기하고 없던 일 즉 해프닝이었다고   하다가 경기가 어려워 동종 업종간의 매매가 잘 성사되지 않자 부동산 업자가 매입을 하여 분할 매각을 한다느니 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한 기운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소문이 원치 않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니 점점 사원들의 표정에도 불안감이 역력하였다.


 모든 것이 비밀리에 진행되었겠지만 얼마 전 매입자는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각이 확정되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고용승계도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부정적인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이 소식을 접하고는 다들 소금에 절여진 배추마냥 침울한 분위기가 며칠간 지속되던 중 결국 3주 전 오전 간부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폐업이 발표되었다. 그 날 회사의 분위기는 침통과 좌절 그리고 막연한 믿음이 깨어진 것에 대한 울분 그 자체였다. 어쩌면 공장 전체가 공황상태로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이 보였다.


 공식적인 폐업을 발표한 당일 누구 하나 허투루 말을 꺼지지도 않았고 다들 웃음기가 사라진 입 주위는 바위덩이같이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삼삼오오 모여 수근 대다가 낯선 사람이나 평소 친하지 않은 직원이 가까이 가면 서둘러 대화를 중단하거나 아무 말 없이 흩어지니 참 뭐라고 말 걸기도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납품을 하고 주로 이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다음날부터의 대화는 사뭇 달랐다. “이 사람아 그동안 고생 많았지 그래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텐가?” 하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다가 올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들로 얼굴 표정은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하였다. 웃고 있지만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울부짖고 있는 듯이 보였고 그저 자포자기 상태에서 각자의 푸념을 툭툭 내뱉는 듯하였다. 개중에는 ‘야   사람아 이제 대충대충해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줄 것 같아 결국은 똑같이 토사구팽(兎死狗烹) 신세이니 잘해줄 필요 없어 에~! 더러워라 죽도록 일한 내 꼬락서니가 참 한심스럽네’ 하며 일말의 배려도 없는 회사의 처사에 대해 노골적인 불편한 감정을 들어내며 들어 라는 듯이 거침없이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섬유산업이 끝없이 추락을 하니 공장마다 신규채용은 고사하고 인원감축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 딱히 오라는 공장도 갈 곳도 없다. 그러니 내년 11일부터는 모두가 하루아침에 한마디로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혹 일부는 남들보다 탁월한 기술을 보유하여 경쟁력을 갖추었다 한들 불과 서너 명 정도의 극소수의 인원에 불과할 뿐 나머지 직원들은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으니 다가 올 엄동설한이 몸서리 나게 암울하게 느껴질 것이며 그저 폐업으로 인해 몇 달간의 실업급여에 의지할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리고 당장 다른 업종으로 전업을 선택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갑작스런 발표에 전혀 준비해 놓은 것이 없으니 이 불경기에 아무런 경험 없는 직종을 창업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요란한 기계음 속에 분주히 뛰고 고함치며 활기가 넘치던 공장의 눈빛들은 차츰 빛을 잃고 길고 긴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그렇다 나 자신도 이들을 걱정할 입장이 아니라 당장 내 코가 석자인 것이다. 올해 나이 쉰여섯 아직 10년 이상은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는데 당장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속 모르는 이는 “아! 이 친구야 얘들 다 키워 놓아 돈 들어갈 일이 없는데 뭘 그리 걱정이냐”고 하지만 정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는 새까만 한숨만 절로 나온다.


집에는 31 30살 연년생의 여식이 있지만 몇 년째 백조(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몇 년이라기 보다 그 나이 되도록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해 본적도 없고 말 그대로 전형적인 칠포(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자택마련, 취업, 희망포기)세대이다. 집사람은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고 앞으로 계속적으로 기약 없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 맞벌이할 입장이 아니며 돈보다는 오히려 건강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청년실업자가 넘치는 현실 속에 우리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한창나이에 꿈을 향하여 불철주야 숨 가쁘게 뛰어도 시원찮을 시기에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일과이다. 몇 시에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대충 감을 잡는 것은 일요일 집에 있어 보면 거의 정오가 되어야 인기척이 들을 수 있다. 배가 고프면 주방에서 먹을 것을 챙겨 거실에서 잠시 끼니를 해결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도대체 방안에서 무얼 하는지 먹는 시간과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 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거실 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여 장래에 대해 부모로서 걱정되는 부분을 말하였으나 이제는 쇠 귀에 경 읽기가 아니라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으니 무슨 대화에 진전이 있으랴? 또 그런 말을 할라치면 오히려 시답잖은 잔소리로 여겨 아예 입도 방문도 마음도 잠가버리니 쉽사리 무슨 말인들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니 이런저런 꼴 보기 싫은 것이 많지만 어찌하랴  나 스스로 눈도 입도 자연스레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상황이 10년 가까이 되니 득도(得道)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포기하고 말았다. 무얼 하고 놀고먹던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집사람이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직장을 구해보겠다고 하여 극구 만류하고는 1년 전부터는 투잡(tow jop)을 하여 생활비 외 별도로 용돈을 따로 주고 있다. 하지만 먹고 뒹굴며 노는 아이들에게까지 용돈 줄 입장은 되지 못하고 설령 돈이 남아 돌아도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얘들은 돈이 떨어지면 비정규직이나 알바(아르바이트)를 잠깐 하다가 돈이 조금 모였다 싶으면 이내 그만두고 두문불출하며 방안에서 뒹굴며 노는 생활을 반복하니 무슨 희망을 볼 수 있으랴?


자연히 얘들과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집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고 좋은 말보다는 쓴소리를 자주 하니 갈수록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가정의 화목을 위해 애들과 집사람을 따로 만나 관계 회복을 위해 수 차례 노력했으나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니 이제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는 달리 방법도 없다.


사실 몇 달 전 집사람과 애들 사이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 대화는 고사하고 한 집에 있으면서 얼굴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그날 이후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없고 서로서로 마음을 닫고 각자 공간에 머문다. 저녁에 내가 퇴근하면 잠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몇 초간 마주칠 뿐이다. 내가 주로 머무는 거실이 잠깐이나마 중립지대로 바뀌지만 간단한 인사 속에 어색하고 무겁게 짓누르는 공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 짙게 가라앉을 뿐이다. 그러다 이내 각자의 방문을 닫고 휑하니 사라져 서로 높은 벽을 쌓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의 관계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퇴근해 오면 아예 입을 지퍼로 잠그고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家長) 입장에서 집사람의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알고도 남으니 집사람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장래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귀도 마음도 틀어막고 철통방어를 하는 애들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니 더 이상 관계 악화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시집이나 보내라고 하지만 이 또한 답답한 것이 칠포를 선언한 지 오래인지라 특히 결혼 이야기를 거론할라 치면 오히려 불같이 짜증을 내고 대화 단절을 하는데 어떻게 시집을 보내며 취업이나 무슨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랴? 여태껏 남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켜주기는커녕 단 한 번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냄새라도 맡았으면 이렇게 득도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나이가 있으니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다라고 하지만 시쳇말로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는 말이 있듯이 도대체 밖을 나가야 뭔가 기회가 생길 것이 아닌가? 하루 종일 방안에서만 뒹구는데 어떻게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단 말인가? 아닌 말로 기회도 노력하는 자에게 선택되어 오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날이 갈수록 찌우는 것은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뱃살 밖에 더 있을까? 그러니 ‘제발 놀아도 밖에 나가서 놀아라’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이젠 이마저도 금기 시 되는 말 중의 하나이다.


 

과년(瓜年)한 여식을 둔지라 간혹 혼처(婚處)가 들어오기도 하였고 몇 번이고 맞선을 보라고 종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고 만약 그런 뜻을 내비친다면 짐 싸서 아예 집을 나가겠다고 도리어 엄포를 놓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딴은 그렇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는데 시집보낸들 불 보듯 뻔한 결혼생활일 텐데 어떻게 억지로 시집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켜만 볼 뿐이다.


한편으로는 비단 우리 자식들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이들이 꿈을 접을 수밖에 없고 희망이 사라진 현실을 어찌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으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취업과 미래에 대한 절망을 갖게 된 사회적 모든 책임의 주체는 분명 우리 기성세대의 몫인 것이다. 또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뒤바라지 못한 가장으로서 나의 책임이 가장 컬 것이다. 어쩌면 나의 경제적 능력을 미리 눈치채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도 많이 했으며 어찌 되었건 나에게는 가슴 아픈 일로 다가오고 남을 뿐이다

주 거래처 폐업으로 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각자의 사연은 나름대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그들의 평균 연령은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이니 오히려 마음고생은 더 심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폐업 발표 직전부터 그 회사 식당의 벽시계가 조금씩 느려지더니 얼마 전에 점심을 먹는 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식사가 다 끝나도록 초침이 한 바퀴를 힘겹게 돌다가 이제는 거의 멈추고 겨우 살아 있는 시늉만 내고 있었다. 아마 그대로 시간이 멈춰 버리기를 바랬을 많은 이의 마음을 대변이나 하는 듯 초침은 그렇게 슬피 울다 결국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어찌 되었건 집사람이 걱정할 것 같아 아직은 함구하고 있지만 조만간 집사람에게 회사의 전후 상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장 몇 달은 힘들겠지만 방법을 찾고 있고 어떻게든 가장으로 경제적 활동을 멈출 수가 없으니 심각히 고민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 아니 찾아야만 한다.


이런 형편이니 몇 년 후 은퇴는 고사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애들을 보며 때로는

폐업을 선언하고 싶지만 그럴 입장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경우이던 수리를 해서라도 절대 가동을 멈출 수 없고 강제로 전원이 차단되지 않는 한 폐업 불가능한 공장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은 서글픔이 앞서지만 그래도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 야만 한다.


근래 서로 다른 몇 개의 눈빛을 보고 있다. 가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근심 가득한 그 회사 직원들의 애잔한 눈빛과 짙은 안개로 자욱하여 삶의 희망을 버린 우리 아이들의 눈빛 또 이런저런 걱정 속에 건강을 지켜야만 하는 안타까운 집사람의 눈빛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거울 속 내 눈빛을 하릴없이 헤집는 또 다른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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