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
연녹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립니다.
산과 구름 반쯤 얼굴 내민 태양
자그마한 개울과 돌담으로 둘러진 초가 집
집 옆에 큰 나무 한 그루와 동네어귀로 이르는 길
조금씩 벗어나고
좌.우가 바뀌어도
세찬 비바람과 뇌우
따가운 햇살과 한파에도
새 도화지 새 크레파스로
언제나 같은 구도의 그림을
그 어느 날
뾰족해진 산 능선
먹구름에 자취 감춘 태양
메말라 버린 개울
고사해버린 크다란 나무
돌담은 무너지고 폐가가 되어버린 집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으렵니다
까맣게 타 들어 간 도화지
크레파스 마저 삼켜 버렸습니다.
애초 그림을 그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애초 집만은 그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애초 꿈을 꾸는 것이 아니었는데
'길가의 작은 돌탑들 > 삶의 노래(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사람 (0) | 2012.12.11 |
---|---|
가을걷이 (0) | 2012.11.05 |
고목나무 밑둥치에서는 (0) | 2012.01.30 |
자루의 이별 (0) | 2011.07.31 |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서 (0) | 2011.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