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고목나무 밑둥치에서는

헤세드다 2012. 1. 30. 09:50

 

 

세월에 까맣게 그을린 고목나무 밑둥치             

볼 상스럽게 할애비가

여린 새싹을 하나를 잉태하고 있다.

 

!

던져 버리지 않고

!

놓아 버리지 않고

 

나이테가 커질수록

잊는 일들이 다반사인데

어찌 잊어 버리고 싶은 것들만 잊어 무엇을 얻을까?

 

여린 새순이 집착의 아귀(餓鬼) 같아

얄팍한 안타까움에 연민의 정마저 스친다.

 

고목나무 밑둥치 옆

수북이 떨어진 오래된 나무 껍질들

 

! 그렇구나

고목나무 밑둥치 새싹

그것은 죄다 벗어야만 틔울 수 있다는 것을

 

껍질 벗고 벗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왔던가

수북이 떨어져 쌓인 껍질은 보지 못하고 새싹만 보았구나

 

고목나무 집착(執着)만 탓한 어리석음이여

보고도 알지 못하는 무지함이여

 

무엇을 잊으려 애써다 잃어 버렸던가?

무엇을 잃어 버리고 찾으려 애썼던가?

애당초 잊을 것도 잃을 것도 없었거늘

 

모진 삭풍(朔風)을 이겨낸 교만의 잔설(殘雪)

봄볕의 미소에 한 순간 주저 앉는 내 모습과 무엇이 다르리오

 

고목나무 밑둥치 파랗게 돋아난 새싹 한 잎

커다란 고목나무를 삼키고 당당히 돋아나 있다.

'길가의 작은 돌탑들 > 삶의 노래(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걷이  (0) 2012.11.05
잃어버린 꿈  (0) 2012.02.07
자루의 이별  (0) 2011.07.31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서  (0) 2011.07.02
산(山)의 손님  (0) 201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