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3

사랑너머 사랑의 시간 여정(旅程)으로

헤세드다 2017. 12. 11. 16:10


-- 사랑너머 사랑의 시간 여정(旅程)으로--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이란 글자를 알기도 전 사랑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반백 년을 넘긴 지금에 와서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찾으려 괴나리 봇짐을 꾸려보렵니다.


 먼저 한글 사전을 찾으니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 궁금점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왜 굳이 사람만을 강조했을까요?

분명 사람도 셀 수 없는 그 많은 존재 중에 하나일 뿐인데 그냥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고……’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편집의 실수인가요?

아니면 존재하는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으뜸이고 중심이기에 강조하고자 그랬을까요?

아마 내 짐작은 후자 쪽이 아닐까 가늠해봅니다.


둘째는 사랑의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주체는 꼭 인간이어야 하는가요?

사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입니까?

존재하는 것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사랑한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을, 인간이 신을,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동물(사람을 제외한), 동물이 인간을 동물이 동물을, 식물끼리 혹은 무생물끼리 등등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사랑의 주체가 되는 존재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이 오류투성이로 우주에는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주체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셋째는 사랑에는 마음이란 감정이 꼭 있어야 합니까?.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란 것 그런 감정이 꼭 있어야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러면 마음이란 것, 감정이란 것은 동물에게만 있을까요? 생물 혹은 좀 더 나아가 유기체(有機體)에는 감정이 있고 무기체(無機體)에는 감정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인간이 판단하는 인식의 오류 하나는 아닐까요? 가령. 원소(元素)와 원소의 결합 혹은 자석이 다른 극성(極性)과의 만남 등등을 우리는 과학이라 통칭(通稱)하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그것이 그들만의 언어와 감정으로 교감하는 사랑의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인식 불가능한 어떤 방식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모든 존재가 공유하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은 지금까지 바닷물 한 컵을 떠놓고 이것이 바다의 전부이다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정으로 무한히 존재하는 모든 것의 깊고 넓은 사랑이란 바다를 어찌 인간이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인간만의 감정 즉 인간이 인식되는 범위에서 모든 존재의 중심이 되어 규정한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인간이니 존재하는 모든 것의 사랑까지 알 필요나 이유는 없습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것도 너무나 벅차니까요


이렇게 여정을 떠나기도 전에 장황하게 서두에 사족(蛇足)을 단 이유는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존재란 관점에서 사랑을 찾아 떠날까 합니다. 하지만 이미 나 또한 인간이니 그 인식 범위 안에서 인간의 언어로 쓸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은 물론이오 이 순간까지 사랑이라 풀이한 주옥 같은 말과 글을 모으면 수만 권의 책 보다 많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잣대와 인간의 언어로 쓴 것에 불과하며 사랑은 인간만이 독차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포괄적으로존재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쓰여 있나 봅니다.


존재

그렇습니다.

사랑을 안다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며

존재하기에 사랑을 알 수가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사랑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존재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꼭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더럽거나 반대의 개념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존재하는 그 모든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존재 전체의 사랑을 논하거나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의 사랑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사랑은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유리알 같은 아침이슬입니다.

사랑은 해거름 잔인한 땅거미를 앞세운 사악한 어둠의 그림자입니다.


사랑은 늦가을 핀 한 떨기 국화꽃 내음같이 향기롭습니다.

사랑은 막 썩기 시작한 두엄 더미가 내뿜는 악취입니다.


사랑은 정성스런 손 맛으로 잘 아우러진 맛깔스런 음식입니다.

사랑은 인공조미료가 범벅된 겉멋으로 타락한 쓰디쓴 독약입니다.


사랑은 품에 고이 안고 불러주는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습니다.

사랑은 보복운전에 이성을 잃고 핏대를 올리며 울려대는 경적음과 같습니다.


사랑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첫사랑과 처음 맞잡은 손길입니다.

사랑은 보기에도 징그럽고 역겨운 벌레가 손등을 기어가는 느낌입니다.


랑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인내하고 강합니다.

사랑은 날카롭고 냉정하며 참을성 없고 나약합니다.


그렇습니다.

존재란 개념에서 사랑을 보자면

사랑은 언제나 긍정적이며 고귀하고 숭고하며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며

사랑은 언제나 부정적이며 추악하고 저속하며 더러울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감히 인간이 어떻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선()이라, ()이라 규정하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삶도 사랑이고 죽음도 사랑입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의 글과 그리고 성인,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 시인 등이 남겼거나 한 말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사랑, 사랑이란 것은

어떤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든

존재하는 존재의 신비에 빠져 그 황홀경 속으로 두 눈을 꼬옥 감는다면

그제야 비로소

사랑이란 것

사랑을 향해

눈을 뜨는 첫걸음마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분명 홀로 피는 꽃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변함없이 이끌어나가는 시간이며

사랑의 어머니는 끝없이 펼쳐지는 공간이니

이것이 존재이며 존재하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완전체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시작은 존재가 시작된 빅뱅(big bang)이며

어쩌면 사랑은 그 최초의 사건을 주도한 이전(以前)에 이미 안배된 신의 섭리 일수도 있으며 인간은 그런 사랑너머 사랑을 인식하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신()이며 신은 사랑 그 자체이며

존재는 신의 손길이자 범접하지 못할 신의 고유 영역입니다.

나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영원불멸의 신을 인식조차 할 수 없지만

신은 인간을 사랑하여 그 신성(神性)을 조금 떼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DNA 첫 연결고리에는

신의 명령이 다음과 같이 암호화되어 새겨있습니다.

너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것이 존재의 이유다라고 말입니다.


사랑 그 완전함은 모르지만 우린 가슴속에는

신성(神性)의 숨결이 스며 있어 본능적으로 그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 중 인간은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사랑그 완전함을 이해하지 못함은

사랑은 오로지 신들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인식의 범주 안에서 언제나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여정(旅程)’

결국 인간의 인식 주변만을 맴돌았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