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 3

사다 붙인 수식어(修飾語)

헤세드다 2017. 12. 23. 12:03



--사다 붙인 수식어(修飾語)--


 


보드블록(步道block) 귀퉁이 비좁은 틈새에

누구도 눈여기지 않는 잡초로 살아도 좋고

깎아지른 벼랑 끝 덩그맣게 볼품없어

자그만 산새도 앉지 않는 가녀린 나무로 살아도 좋다.


적막한 산속 그늘진 곳의 두터운 돌무지 밑에

바람조차 찾지 않는 이끼로 살아도 좋고

갯바위 차가운 파도에 온몸을 휩쓸리며

하얀 포말(泡沫)이 그리운 바다풀로 살아도 좋다.


플라스틱 물받이 안 흩날린 먼지로 쌓인 얇디얇은 흙바닥에

오늘 하루만 겨우 버티는 잔풀로 살아도 좋고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하늘마저 얼어붙은 겨울밤

달무리 곁을 스치며 순식간 사라지는 연무(煙霧)로 살아도 좋다.


그래서

아무도 무언지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누구도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좋으며

모두가 무관심한 그딴 것들로 살아도 좋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름 석자 얻었으면 그만이지

그 앞뒤에 무얼 그리 거추장스레 치렁치렁 달고 싶은가?

물론 피나는 노력으로 정당히 얻은 것이야 훌륭하지만

뭇사람들이 사랑과 존경으로 붙여 준 것은 더할 나위 없으리라


하지만 돈으로 사서 끌어 모은 수식어가 왜 필요할까?

돈으로 사는 것도 노력이고 능력이라니 딱히 할 말 없지만

남이 붙여 준 것도 아닌데

굳이 제 돈을 들여 이름 앞뒤에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세상이로구나


돈으로 사서 허접스런 꿰맨 명예

돈으로 사서 자랑질로 붙인 상장(賞狀)

돈으로 사서 폼 재려고 박은 직함(職銜)

돈으로 사서 거들먹거리려 꾸민 짝퉁 인생이로구나


과연 무엇을 위해 사다 붙여 모았을까?

그냥 이름 석자면 족하지 않은가?

아무런 수식어 없이도 제 이름값 하는 이가 더 많으니

이름 앞뒤로 육두문자나 저속한 비속어가 붙지 않으면 잘 살은 것을


이름 앞뒤 붙여지는 수식어는 그렇지 않은가?

참으로 그에 걸맞게 잘 어울리는 사람과

있는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위대한 대자연(大自然)에게

기꺼이 그 몫을 돌려주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