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강 저편에서---
넘실거리던 그리움이란 강은 기억 속에 메말라 다시 흐를 수 없는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첫사랑이란 이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연결된 까마득한 저편에 있는 자그마한 봇도랑까지 찾는 시간들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여 가슴 저며 오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했다.
이 글을 쓰려고 생각한 몇 달 동안 또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큰 줄기 저 끝에 가냘프게 매달린 작은 가지의 추억을 뒤지니 새삼스레 가슴 떨림으로 다가 온 것 같았다. 어린 날 불현듯 사랑으로 다가와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녀와의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의 흔적을 하얀 백지 위에 한 점 한 점 그려본다.
시내가 빤히 보였지만 우리 집 아니 동네는 큰 신작로에서 과수원과 드문드문 묘지가 있는 밭을 지나 1킬로 가까이 한참을 돌아 들어오는 다소 외진 곳이었다
가구수라 해봐야 총 4가구로 처음에는 우리 집뿐이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바로 뒤에 논을 메워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왔는데 같은 학년의 남자 친구
집이었고 그러다 몇 년 후에 좌측 언덕을 끼고 두 집이 새로 집을 지어 그렇게
총 4가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16살인 중학교 3학년 때 뒷집의 친구 가족이 갑자기 서울로 가고 새로 이사를 왔다. 그 집 식구는 부모님보다는 조금 젊은 듯한 어른들과 대여섯 살 위로 보이는 형 뻘 그리고 그 아래는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의 자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탐색을 하듯 힐끔거리며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니 형제만 사는 군대 같이 딱딱하고 다소 거친 우리 집 분위기와는 뭔가 사뭇 달라 보였다.
사실 어릴 적부터 누나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바로 뒷집에 여자 애들이 오니 괜히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 듯 몹시 마음이 들떠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어렸으니 그 소녀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생각해 보니 시작부터 그녀라고 호칭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사춘기에다 성격 또한 내성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달 동안 그녀를 보고도 인사는커녕 언제나 마주치면 얼굴을 먼저 돌린 것은 나였다. 그녀를 보면 마냥 쑥스럽고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마주 볼 용기도 없었고 간단한 인사 한 마디 조차 먼저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 서고 나면 목덜미와 얼굴이 목련보다 더 희고 작고 갸름한 예쁜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왜 그런지 그녀를 보거나 생각만 해도 그냥 가슴이 떨려오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이 차이도 났으니 쉽게 말을 걸 수도 있을 법한데 마법에 걸린 듯 입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게다가 이상하게 처음 본 순간부터 뭐에 홀린 듯 그저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가벼운 눈길마저 계속 머리 속에 생생하게 맴돌았다. 밤에 누워있으면 천장에서 돌아 누우면 벽에서 미소를 머금고 나를 쳐다보는 듯하여 가끔 잠을 뒤척일 때도 많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옆집에 동급생의 여자 친구와 한 살 아래 여동생 그리고 그 옆집에는 두어 살 어린 동생뻘 여학생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가진 적도 느낀 적도 없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그 또래 애들은 두 집 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 왔는데 처음부터 그냥 거리낌 없이 잘 지냈고
친구나 동생같이 집에도 편하게 놀러 가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뭔가 분명 달랐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 내 마음속을 마구마구 흔들어 놓았다. 그러니 쉽게 다가갈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가슴 떨림으로 속앓이만 한 채 스스로 말문의 족쇄를 채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녀를 만난 후부터 갑자기 외모나 외관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여지는 것이었다. 평소 농사일과 가축을 기르는 일 그리고 산에 땔감을 하며 그냥 아무렇게나 마구 자란 촌 머스마 같은 모양새가 갑자기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또 평소 늘 낡고 몸에 비해 커다란 도포 같은 교복과 꾀죄죄한 일상복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모님께 괜한 짜증을 부리곤 하였다.
사는 형편은 우리 집 보다 조금 나은듯 했지만 별반 차이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자매는 언제나 주름치마에 레이스가 달린 왕궁의 공주가 막 외출 나온 듯한 너무도 곱고 예쁜 차림이었다. 긴치마를 나풀거리며 다니는 모습은 한 마리 나비가 하늘하늘 춤을 추는 듯한 차림새였으니 모든 것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모든 면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잘 보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러니
스스로 주눅이 들었고 그럴수록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여태 동네 또래 여자 애들에게는 이런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녀 앞에서 만큼은 이런 내 모습이 왜 그리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였는지 처음에는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도 춥고 눈도 제법 내린 직후라 산으로 땔감 하러 가기에는 힘들어 인근 과수원에서 이리저리 땔감을 찾고 있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자매가 자그마한 손으로 땔감을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상치도 않았던 뜻밖의 광경에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험한 일은 당연히 부모나 오빠 되는 분이 하리라고 생각했고 곱디곱고 여리며 예쁜 자매가 이런 일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궂은일을 하는 광경은 평소 그려왔던 그 자매의 일상과는 도저히 조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의아해하며 지켜보니 땔감을 처음 해 보는지 서투른 모습이 역력했고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한편으로 매일 빈둥거리며 노는 듯한 무심한 그녀 오빠가 갑자기 무지하게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빤히 보이는 거리에 있으면서 서로 아무 말도 않고 각자의 땔감을 찾고 있었지만 온통 시선은 자연 그 자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땔감을 빨리 구해 집으로 가서 소여물도 끓이고 군불도 지피고 해야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자매를 보는 순간부터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저렇게 해서 땔감 한 다발을 언제 할까 싶을 정도로 서툴기 짝이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하여 여태 해놓은 내 몫을 몽땅 들고 가서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묶어 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않고 추운데 어서 들고 집으로 가라고 눈 빛으로 건넸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한 행동이 너무 계면쩍어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 자매는 내가 다가와서 땔감을 주는 것부터 의아하게 생각되었는지 그런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러고는 뒤돌아 한참을 갈 때까지 내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 보기에 빨리 집으로 가라고 손 짓을 하고는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어찌 되었건 이 일이 그 자매 아니 그녀와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머문 시간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지나가다 마주치면 그냥 가볍게 웃으며 눈인사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비록 말은 건네지 못했지만 가슴속은 빨래 방망이처럼 심하게 요동질쳤고 눈을 감으면 그녀의 모습이 더욱 어른거리며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랬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 알 듯 말 듯 야릇하고 가슴 떨렸던 묘한 느낌은 내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사실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 그녀의 집에 놀러 가려해도 내 또래가 없으니 어떤 핑계를 대어서라도 혼자 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자매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듯 옆집에 사는 또래와 동네 언니, 오빠 그리고 내 동생들과는 스스럼없이 잘 지냈고 때로는 그녀의 집과 방에서 함께 노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집은 TV가 없었기에 간혹 동네 또래들이 그녀의 집에서 TV를 보며 함께 놀자고 하면 못 이긴 척 마지못한 두어 번 간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직접 말을 건넨 적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그녀 앞에만 가면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듯 경직되니 그저 멀뚱멀뚱 앉아 있다 오는 것이 전부였다.
간혹 여러 명이 있을 때 꼭 하고 싶은 간단한 말도 옆에 있는 내 동생이나
그녀의 동생을 통해 전해 주라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서로가 뭔가 어색함이
감돌며 그렇게 겉돌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한 번이라도 눈에 드러나게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뭔가
모를 그런 어색함이 늘 함께했었다. 분명하게 느낀 것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었다.
언제나 내 동생이나 동네 남자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다가갔고 특히 “오빠”라는 호칭을 대수롭게 불렀다. 하지만 내게는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직접 말 건네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레 하는 눈치였다. 내심 마음속으로는 ‘유독 내게만 왜 그러지’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라도 “왜 내게는 오빠라고 부르지 않아? 나도 오빠라고
불러야지”라고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용기도 없었고 무엇 때문인지
도무지 간단한 말조차 쉽게 건넬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포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녀와의 사이는 조금도 진척 없이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떠날 날은 점점 다가오고 짐을 하나하나 꾸렸지만 한동안은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 한켠은 안타까움만 더해갔다. 매일 밤이면 밤마다 내일은 반드시 용기를 내어 꼭 말해봐야지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나 아침이 되면 혼자 수 없이 되뇌었던 말들은 연기처럼 허공에 흩날려 버렸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전혀 연고가 없는 낯 설은 땅 포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 집안 형편이 학비도 근근이 내야 할 정도였으니 한 푼의 용돈도 이라도
아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쉽게 고향에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며 한 나절 가까이 소요되는 거리도 문제였고 한 번 오갈 때마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으니 방학이나 명절 외에는 자주 갈 수가 없었다.
첫여름 방학이 되어 고향 집으로 오면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뵈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혹
이제는 그녀가 반기지는 않을까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등등의 생각에 그저 가슴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이튿날 그녀를 집 밖에서 오랜 에 보게 되었지만 그저 눈 빛 만으로 멋쩍게
빙그레 웃을 뿐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괜히 쑥스러워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객지로 떠난 몇 달의 공백 기간은 처음 만날 때의 분위기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더 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한 달이 넘는 방학 기간이었지만 몇 달 전 포항으로
가기 직전의 상황에 비해 진전되기보다는 더 서먹서먹하고 단절감 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옆집에 시골에서 이 곳의 고등학교를 다니기 온 나이가
같은 동급의 자취생 친구가 생겼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이 학생과 친구로 지내기로 하였는데 내 성격과는 판이하게 달라 활발하고
쾌활하며 말재주나 아무에게나 붙임성이 좋았다. 내가 없는 몇 달 동안 이 곳
생활하면서 주변 또래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너무 잘 지내는 것이었다.
아무 집이나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몇 년을 같이 지낸 나 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지냈고 특히 그녀와도 곧잘 장난치는 다정한 모습이 때로는 꼭 오누이같이
보였다. 또 그녀는 그 친구에게 꼭 “오빠” “오빠”하며 내가 그리 듣고 싶었던
호칭을 아주 자연스럽게 부르며 마치 친동생 같이 잘 따르는 것이다
속으로 약간의 질투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의아했던 것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에 저렇게 ‘오빠라는 호칭을 부르며 그렇게
살갑게 대하면서 왜 나한테 만큼은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속이 좁아 그런지 그런 다정한 모습을 몇 번 보며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실망감과
왠지 모를 부아가 치밀고 약간의 배신감 같은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어 오히려 만나는 것이 더 꺼려졌고 불편하여 웬만하면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간혹 그 친구가 직접 오거나 때로는 동생과 이웃의 또래 애들을 통해서
이웃집이니 밖에서 같이 놀자고 하여도 아무런 할 일이 없으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는 두문불출하였다.
내심 속으로는 무척이나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고 잠시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괜히 심통도 나고 한편으로는 용기 없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패배감 같은 자책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애만
태우며 꼴랑 아무 의미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티는 나날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꼼짝 않고 집에 있으면 친구가 일부러 찾아와서 “뭐 지금 공부도
안 하고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왜 그러냐? 에이 괜히 튕기지 말고 같이 나가 놀자”
하고 억지로 손잡고 나가면 마지못해 한 두어 번 나가서 같이 놀기는 했지만
모든 것은 건성건성이었다.
그렇게 밖에서 같이 뛰어 놀기도 하고 때로는 방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 때도 그리 끼고 싶은 맘이 없으니 그냥 멀찍이 구경하듯
했고 함께 있어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웃지도 않고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그렇게 조용히 있었다.
명랑하고 언제나 활짝 웃는 그녀의 밝은 미소를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다 온다 간다 말도 않고 집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왔고 그녀 역시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무심히 바라만 볼뿐 한 번도 더 있다 가라고 잡은 적이 없었다.
몇 번의 방학과 명절 그렇게 계절이 바뀌어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3년 내내
그렇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말도 못 하고 부자연스럽게 그렇게 보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슴속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정성스레 돌탑을
쌓듯 하나하나 여울져 쌓여만 갔다.
때로는 몇 번이고 편지를 써서 다음번 방학 때는 꼭 전해줘야지 하고 마음먹고
장문의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결국 전하지도 못하고 아궁이
속으로 불길과 함께 타올라 허공에 흩날리는 재가 되어 사라졌고 가슴 속도
그렇게 까맣게 타 들어만 갔다.
졸업을 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을 하였고 몇 달 후 월차를 모아 2박 3일간의 황금같은 첫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았다.
취업 후 처음으로 가는 휴가인지라 나름대로 부모님께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양복점에 가서 바지랑 남방을 맞춰 입고는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향했다. 녹음이 점점 짙어져 계절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는
그날 해가 서산 녘에 걸려있을 무렵 동네 어귀로 들어섰다. 시골집이 저만치
보였을 때였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뒤 따라
오기에 “누구지”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 길은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유일한 골목이었기에 분명 이웃의 아는 동생 중의
한 명이겠지 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생각하였던 그녀가 단정하게 교복에 가방을 들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어느새 그녀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구나’라고 시간이 그렇게
흘렀음을 실감하던 차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시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녀의 발걸음도 함께 멈추었다.
그녀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마음속에 간직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해 냉가슴만
앓았던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잠시였지만 멈춘 시간은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의
몇 년을 되돌리는 듯한 너무도 기나긴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 서 있은 듯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사실 잠시 내 눈을 의심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교복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소녀에서 성숙해진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이런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몹시 당황하여
어떨 결에 기어들어갈 듯 겨우 튀어나온 말이라고는 고작 “오랜만이네”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이것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직접
건넨 말이었다. 그리고 어떤 말이든 더 이어가고 하고 싶었지만 그저 입안에서
맴돌 뿐이니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한 마디 인사말에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들어 잠깐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빠도 오랜만이네”하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총총걸음으로 그냥 휑하니 옆을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잠시 꿈을 꾸는 것 같았고 가슴 깊은 곳까지 심장이 마구마구 요동치는 듯하였다.
그녀에게 “오빠”라고 처음 들은 말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집에 당도할 때까지
멍하니 앞서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꽁꽁 묶인 채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도무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코 앞이 집인데 그렇게
한참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로부터 들은 그 한마디는 몇 년을 뭉텅 거려
묵직한 한 점으로 다가와 가슴속 깊이 고이고이 파고들고 있었다.
부모님께나 동생들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어떤 말에도 그저 대충대충
대답할 정도로 귓전으로 흘려 들었고 그날 밤은 그 여운으로 인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하교할 때까지 집 밖을 수 없이 왔다갔다하며
하교하기만을 기다렸고 집 부근에서 우연히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하였지만
잠시 안부 몇 마디 하고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미 없이 지나는 시간이
무척이나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그나마 지금까지의 상황과 비교하면 서로 말을
직접 건넸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했다.
내일이면 다시 가야 한다는 말도 못 한 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 날 짐을
챙길 수밖에 없었고 다음 날 가방을 들고 동네 어귀를 터벅터벅 아쉬운
발걸음을 한발 두발 옮겼다.
동구 밖으로 나서기 전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 집
주위를 수 없이 뒤돌아 보았다. 그런데 혹 누가 볼세라 그녀가 집 모퉁이에서
멀찍이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 그녀가 간다는 것을
알고 나를 마중하려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너무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몹시 떨려 왔다. 하지만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도 뭐라 소리칠
상황이 안되니 어쩔 수없이 한쪽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높이 들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흔들었고
그 모습을 그렇게 가슴속에 새기며 포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 야간 대학을 다녀야 하는 정신없이 바쁜 생활이었지만 다가 올 추석에는
그녀 얼굴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오 관계가 더 친밀하게 될 들뜬 기대감에
마음은 구름 위에 머무는 듯했다. 벼르고 벼르던 그 해 추석 때 핑계 삼아
용기를 내어 집에 들러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와는
따로 얘기할 틈이나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음 날 집 밖에서 잠시나마 그녀의 학교생활과 객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을 서로 물어보는 정도의 아쉬움 가득한 짧은 대화만 오갔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짧은 대화 속에 그녀는 “오빠”라는 호칭을 스스럼없이 하였고 몇 마디
밖에 나눌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으로 다가왔다.
여태껏 객지 생활이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했지만 그 후로는 세상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지금까지 굵은 동아줄로 꽁꽁 묶여 가슴을 꽉 죄어 왔던 것들이
사라지고 뭔가를 확인을 했다는 안도감과 앞으로 펼쳐질 우리들만이 만들어갈
꿈같은 이야기를 그려보니 그저 두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풍선과 같이 부푼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설 명절 때는 그녀의 집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이사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구실을 삼아 찾아 간들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찾아 가지않고는 그녀를 볼 수 없으니 어떤 민망함을 무릅쓰고 라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 반기셨지만 어머니는 ‘아무리 명절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일부러 찾아와 인사할 것 까지야’ 하며 다소 의아해하며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확실히 여자는 직감적으로 느끼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녀와 내 사이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벌써부터 조금은 눈치는 채고 있었던 것 같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본능적으로 아직 어린 딸을 보호하려는 경계심이 짙게 깔려 있는 듯했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이니 오래 있을 수도 없었고 따로 만나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얼굴만 잠시 보고 헤어져야만 했다.
그렇게 안타깝고 그리운 시간들을 바쁜 사회생활이 날름날름 먹어 치우던 그
해 여름이었다. 막 퇴근을 하려는데 사무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누가
면회를 왔으니 빨리 면회실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부모님께서 오셨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갑자기 연락도 없이 온 것에 한편으로는 ‘농사일로
바쁘실 텐데 무슨 일이 생기셨는가’ 하는 반가움 반 걱정 반이었다.
면회실로 가서 부모님을 찾았으나 면회자를 확인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온몸이 급랭되어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곳까지 찾아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교복을 입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손을 잡고 달려오며 “오빠”하며 손을 들어 환한 얼굴로 반기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먼 거리를 이 곳까지 어떻게 찾아왔으며 어떻게 올 생각을
했고 그녀의 부모님은 어떻게 가라고 허락을 했을까? 등등 짧은 순간 여러 가지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그보다는 분명 이건 꿈을 꾸고 있을 거야 할 정도로 오히려
헛웃음만 나왔고 머리 속은 잠시 넋이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오! 하느님 이것이 정녕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고 싶을 정도로 헛것을 보고 있는 같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도무지 이 상황,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멍히 할 말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친 오누이 같이 환희
웃으며 “오빠 잘 있었어?” 하며 내 손을 잡았고 어떨 결에 그녀와 동생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무 뜻밖이었고 눈물 나도록 반가운 마음에 와락 껴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올 것이라고는 꿈엔들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내 눈 앞에 그녀가 마주 서서
환희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성인(成人)도 아닌데 멀고 먼 낯선 길을 여기를 찾아오기까지 오랫동안 차를
타고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불그스레하게
달은 양 볼에 수줍음 가득한 듯한 모습은 여행길의 모든 어려움과 이 곳까지
온 이유를 대신 말하고 있었다.
하숙을 하고 있는 터라 주인아주머니께 고향에서 동생들이 왔다고 말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머니와 평소에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터라 분명
여동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도 느닷없이 둘씩이나 데려와 동생이라고
하니 계속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녁에 그녀의 동생과 같이 앉아 그간의 고향의 소식과 밀린 이야기를 하였지만
“어쩐 일로 갑자기 이 곳에 어떻게 왔어?”라는 말을 묻고 싶었지만 속으로
짐작만 할 뿐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 동생이 내 마음을 눈치를 챈 듯 “언니가 벌써부터 방학이 되면
몇 번이고 오빠한테 꼭 한번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아시면 안 되니까
비밀로 하기로 하고 대구에 사는 친척집에 간다 핑계 대고는 이 곳으로 곧장
왔어요” 그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동생 옆구리를 툭 치며”왜 쓸데없이 그런 말을 해”
하며 순간 햇살을 한껏 머금은 6월의 복숭아 마냥 양쪽 볼이 발그스레 달았고
이내 수줍고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랬다 처음 만날 때는 어린 나이였고 제법 나이 차이도 났으며 그간 앞뒤 집에
살며 자주 대화를 나누며 가깝게 지내는 마음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물론 이웃에 사는 오빠 동생으로 친하게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꼬였던
것은 그녀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대며 가슴에 가득 차 버릴 듯한 사랑이란
감정으로 다가왔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 만날 때 비록 5살의 차이의 어린 소녀였지만 나는 그때 사춘기로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열병을 앓고 말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랑으로 가슴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 가슴 떨림 때문에 쉽게 다가설 수 없어서 말을 걸기도 힘들었고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끙끙 앓고 지내왔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나이가 어렸기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내색 또한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동생이 잠시 밖에 나가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더니
“오빠 사실 전부터 오빠 생각 참 많이 했어 그리고 오빠 마음도 알 것 같고 오빠 많이 보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어” 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갑자기 숨이 콱 막힐 듯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로 대신 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이 곳까지 온 것은 그간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대신한
것이니 이 순간 어떤 말로도 고마움을 대신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찾아오기까지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니 그간의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올랐지만 꾸욱 누를 수 에 없었다.
꽃 길을 걷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하였다. 지금 눈 앞에는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앓이하며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그녀를 마주하고 있으며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 보다 더 하얀 그녀의 고백을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그녀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다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처음 만날 때부터 어떻게 내 마음에 다가왔고 여태 어떻게 생각하며 지내 왔는지 그간 쌓였던 모든 것을 가슴에 고이 접어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그 언젠가 때가 되면 웃으며 모두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나에 관한 이야기를 동생이랑 얼마나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동생도 나와 언니가 그냥 단순한 이웃의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잠을 자야 하는데 단칸 방이라 어떻게 자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녀를 바로 옆에 자게 하고 그 옆에 동생을 자게 해야 하나
그녀를 벽 쪽에 자게 하고 동생 바로 옆에 자야 하나 잠자리를 준비하면서도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고 한 듯 그녀
동생은 “오빠가 중간에 자면 되겠네요” 하는 이 한 마디에 간단히 잠자리 배치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잠시 그녀와 눈길을 마주쳤지만 말없이 그렇게 정해진
자리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뛰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하여 혹 이 소리가 그녀에게 들킬
것만 같았고 억지로 눈을 붙였지만 억지로 밧줄에 묶여 있는 듯 가만히 누워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자꾸 흘러 방 안 가득 어둠이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편히 이내 잠이 든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우리 모두가 성인이었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아직은 중2학년 밖에 되지 않는 미성년자였고 추호도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물론 동생이 옆에 자고 있건 없건 아무런 관계없이 둘만 있다고 하여도
이것만큼은 확고한 이성(理性)적인 내 마음이었다. 오로지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고 고귀한 사람으로 아침이슬과 같이 눈부신
그대로를 지키며 고이 간직해야 할 그녀인 것이다.
이렇게 먼 길을 달려 오빠를 보고 싶어 온 친 여동생 이상으로 또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로지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며 가로등 빛을 받아 뿌옇게 빛나는 창문만 쳐다보았다.
솔직히 마음은 그냥 잠시라도 한 번만 꼬옥 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도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소리를 죽여가며 뒤척거렸다.
그렇게 잠을 못 이루고 비몽사몽의 시간이 얼마나 흐른 채 잠깐 잠이 들었을까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살며시 떠 보니 그녀를 향해 가로로 몸을
돌려있었고 바로 눈 앞에 그녀의 얼굴이 닿을 듯이 마주 보고 있었으니 그녀의
숨소리가 바로 얼굴에 와 닿았고 내 쉴 때마다 온통 내 가슴을 몽땅 녹일 듯
온몸을 보라 빛으로 적셔져 숨 조차 쉬기 힘들었다.
몸을 돌아 누울 수도 혹 잠이 깰까 그녀의 몸을 바로 뉘게 할 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였지만 생각과는 달리 가슴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굳어버린 듯 꼼짝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한참을 시간을 보내며
잠들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하지만 의지와는 달리 내 팔은 어느새 그녀의 어깨를 감쌌고 아마 그 순간까지
수 억년이 걸렸던 것 같았다.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그간의 애탔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깨를 감싸던 손을 풀고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으니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내 손을 힘껏 꼬옥 잡아
주는 것이었다. 어깨를 몇 번이고 토닥거려 주고는 손을 잡은 채 잠이 들었고
그렇게 꿈같은 시간 속에 아침을 맞았다.
다음날 그녀의 부모님께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하니 대구에 있는 친척집으로
간다며 나섰고 더 이상 머물다 가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뒤부터는 하루하루가 황홀경에 빠진 듯 행복했고 한편으로는 더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비록 그녀는 떠나고 텅 빈 잠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함께 했던 그 곳으로
잦은 눈길을 띄워졌고 채취와 목소리를 되새기며 허전하고 쓸쓸했던 마음은 늘
그녀의 환한 미소로 가득히 채워졌다.
그 후 명절 때나 휴가 때 만났지만 잠시 잠시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고 늘
그렇듯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하지 못하고 가슴에 새기며 보내야만 하였다.
매일매일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보낼 수도 없었고
가끔 적었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는 눈물 속에 쌓였다가 그렇게 바싹 말라
사라져 버렸다.
한 해가 지나고 그녀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인근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휴가 때 잠시 그녀의 집을 기웃거리며 찾았으나
어쩐 일인지 볼 수가 없어 애타는 마음으로 몇 시간을 집 주변을 수없이
기웃거리다 그녀의 동생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동생은 반갑게 웃기보다는 얼굴에는 잠깐의 엷은
웃음기가 스치듯 이내 사라지고 뭔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불안함이 느껴졌다.
“언니는?”하고 물으니 머뭇거리며 한참 뜸을 들이더니 “오빠 언니는 집 안 형편
때문에 대구에 있는 섬유공장에 취직해 갔어요 학교는 아마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거예요”
청천벽력 같은 뇌우가 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집에서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 것이라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도무지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의아한 눈길로 보고 있으니 그녀의 동생은 짧게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은 잘 나가지도 않고 알코올 중독자처럼 허구한 날 술에 젖어
있고 오빠는 이혼하여 소식이 없고 집안 살림살이를 어머니 혼자 하시니 그간
너무 힘들게 보냈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들었지만 당장 내가 어떻게 힘이 되어 주거나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가슴을 바늘로 쿡쿡 찌른 듯 아플 뿐이었다.
그녀의 동생에게 근무하고 있는 회사 주소를 받고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렇게 집안 형편이 힘들어 그전에 만나도 아무런 말도 않고 그저 고개만
숙였고 가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머뭇거리기만 하고 그냥 말
없이 바라만 보았구나’하고 곱씹어 생각하니 그간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너무 무심했던 날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두어 달 지난 후 그녀의 회사에 찾아가 면회신청을 하였다. 근무 중에는 면회
시간 장소 등이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가족 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그렇게 적기는 했지만 내심 신분증을
보여달라 할까 봐 조바심 가득했으나 다행히 신분증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니 그냥 가족으로 판단하였던 것 같았다.
조바심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좁은 면회실을 서서 왔다갔다하며 올 것만
같은 방향으로 뚫어져라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장 안에는 많은 여공들이 왔다 갔다 했지만 저 먼 곳에서
걸어오는 모습은 분명 그녀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안타깝고 미안함 등 여러 감정들이 겹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손을 꼭 잡은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으나 누구도 먼저 선뜻 말을 꺼낼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며 눈 빛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보니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고
야간을 하고 잠을 자고 있다가 연락을 받고 나온 듯 얼굴이 몹시 부스스하였다.
어린 나이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애써 참았지만 안쓰러워 눈시울이
짙게 붉혀졌다. 그냥 손을 꼭 잡고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면회 시간이 다 되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만 위로도 어떤 희망적인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달픈
공장생활로 겨우 반쪽 된 작은 어깨만 토닥거려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 너무 미안하고 가슴만 미어졌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고 뒤돌아 보는 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또
보았지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은 예리한 칼로 난도질을 하듯
아파왔다.
그렇게 헤어지고 몇 번이고 그녀의 회사로 편지를 썼으나 답장이 없어 애만 탔다.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갔으나 그녀의 시골집은 또다시 어디론가 이사를 갔고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얼마 후 군 입대를 하였고 첫 번째 휴가를 받고 이사 간 집을 찾으려 여기저기 알만한 곳에 직접 찾아가 묻고 또 물어보며 부단히 알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무거운 발길로 귀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긴 지 한 해가 지났을 때쯤 도저히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어 시골에 있는 내 동생을 꼬드겨 그녀와 여동생 주변을 샅샅이 알아 보고서야 어렵사리 이사간 집을 찾을 수가 있었다.
두 번째 휴가를 맞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으나 불쑥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밖에서 술을 한 잔 하고 오시던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반갑게 손을 잡고 집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반가이 맞이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손에 이끌려
어떨 결에 방안에 들어와서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방안 벽 중앙에는 그녀 어머니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피운 지 제법 된 듯하여
거의 타 들어가고 겨우 남아 있는 작은 향이 피어오르며 홀로 슬픔의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할 수도 없어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됐네… 술 한잔 올릴 텐가?” 하시며 울먹이셨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하셨다. 그녀의 아버지가 따라 주시는 술을 받아 절을 올리고는 두서없이
그간의 어려웠던 이야기와 자책 가득한 한스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그냥 가슴만
먹먹해졌다.
그녀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너무도 알기에 억장이 무너지도록
비통했을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 주지도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그렇게 그녀 아버지의 눈물 섞인 넋두리를 듣고만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마음 쓰라린 그녀 아버지의 끝날 것 같지 않는 지난
일들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수도 없어 인기척을 핑계로 밖으로 나오니 그녀의
동생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교복을 입은 것을 보니 그녀 동생은 그 사이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자 그녀 동생 눈에는 금세 눈물이 비쳤고 나 역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녀의 아버지께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대문 밖을 나섰다.
잠시 대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그녀 동생이 뒤따라 와서는 한참을 망설이다
앞뒤도 없이 “오빠! 오빠 이제 언니는 잊어요”
도대체 어떤 연유도 말하지 않고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누르고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대문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뒤 따라가서 그간의 모든 것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그저 멍하니 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한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언니는 지금
어디 어떻게 지내고 있고 그동안 왜 연락을 끊었는지 다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대문을 열고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두터운 베일에 가려있는 듯한 수수께끼와 같은 그 한 마디는 다른 궁금증을 모조리
닫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질문들을 발에 가득 매단 채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쓰린 가슴을 안고 귀대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동생의 그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아 온갖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 군생활을 힘들게 버티고 나가고
있었다.
전역을 몇 달 남기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면회실에서 갑자기 면회를 왔다는 연락을 받고 참 의아하게 생각했다. 면회를
오라고 부탁한 사람도 없거니와 전역을 얼마 앞두고 있기에 딱히 면회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혹 대구에 살고 있는 친구인가 했지만
설마 그 녀석이 면회 올리는 없을 것이고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하며 면회실 문을
여는 순간 너무 놀라 문을 연 채로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렇게 기다리고 찾으며 한 시를 잊을 수 없어 괴로움과 눈물 그리움으로
그려갔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것이었다. 너무도 예쁘고 고운 옷차림의
그녀는 완연한 숙녀로 바뀌어 화사하게 활짝 핀 한 떨기 꽃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아니 이 곳을 어떻게 알고 왔으며 그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 갑자기 불쑥 찾아온
모든 것에 여러 궁금증보다는 그냥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찾아오다니 이제야 찾아오다니 너무 반가움에 눈 앞에 서 있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그간 머리 속에 갖고 있던 모든 궁금증은 하얗게 지워져
버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외출을 허락받아 가까운 시내로 향했다.
내 동생을 통해 이 곳의 주소를 알았고 주소를 보자마자 어딘지 금방 알았다는
것이다. 그랬다 대구에 살고 있다는 유일한 친척이 바로 부대 옆 몇 안 되는
민가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매일 아침 기상하면 정문을 통과하며 아침 구보를
하였지만 구보 코스인 도로 옆에 매일 보게 되는 집이 어찌 그녀의 친척집일
것이라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주소를 받고는 이 곳 친척 집에 몇 번 왔기에 주변을 잘 알고 있어 쉽게 찾아
올 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대구에 친척이 살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녀의 설명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는
그녀와의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엮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간 그렇게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물으니 지금은 서울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며칠 휴가를 받아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어느 곳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직장인지에 대해서는 그저
묵묵부답인 채 가벼운 웃음으로 일관하며 “오빠 동생한테 시골집에 몇 번이나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냥 오빠 보고 싶어 왔으니 다른 것은 묻지
말았으면 좋겠어”
“오빠 지금 내가 이렇게 왔잖아 그럼 된 것 아냐” 그렇게 에둘러 말을 돌리니
더 이상의 근황과 그녀의 동생이 던진 그 한마디의 의미에 대해 도저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답답하고 궁금하였지만 끝내 웃음으로 넘기며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함구하는 그녀를 계속 채근할 수 없었다.
당장 그녀가 내 눈 앞에 있다는 이 사실 만으로도 가슴 벅찼으니 이전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궁금증들을 마음속에 깊이 파묻어 버렸다. 전역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그녀가 옆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그녀와 함께 한다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꿈속 같이 달콤했던 짧은 외출을 마치고 돌아서 귀대하는 발걸음은
사실 납덩이 보다 더 무거웠다. 그렇게 가슴 떨리며 보고 싶었던 그녀를 만난
기쁨도 잠시 헤어지고 나서는 마음 한 구석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드리워짐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전역하면 바로 찾아갈 테니 살고 있는 곳
주소만이라도 알려달라 몇 번이고 말했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서울이라는 것
외는 주소도 어떤 연락처도 나중에 자연 알게 될 것이며 곧 만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묘한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러니 고개를 저을수록 그녀 동생이 한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얼까 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미뤘던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부모님께는 며칠간 서울에 사는 형 집에 잠시 들르겠다고 말하고는 시골에 있는
그녀의 집에 들렀다. 그녀의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혹 알고 계시면
주소를 알려달라 하였더니 별 다른 망설임 없이 편지 봉투를 찾아 바로 주소를
적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는 “내가 이렇게 사니 면목이 없어 한 번도 찾아 가지
못했네 그래 자네가 꼭 찾아 가보고 대신 내 말도 전해주게나 애비가 참
미안하다고…” 하시며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셨다.
혼자 만의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짧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 속에는
꼭 만나서 앞으로 잘 보살펴 주고 둘의 관계가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뉘앙스를
받았다.
그 전에도 가끔 그녀의 집에 찾아 가면 그녀의 어머니는 약간은 경계를 하며
그리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항상 반겨주셨는데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서울에 도착하니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을씨년스럽게 가랑비가 날렸다.
하지만 곧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앞에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찾고야 말겠다며 마음먹고 올라 왔지만 서울 지리가
생소한 지라 주소만 갖고 집을 찾는다는 것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신림동이었는데 동을 찾은 것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렸고 번지가 가까워질수록
산비탈로 이어진 골목은 미로 같이 얽혀 있고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완전 달동네였다. 포기할 이유가 없었기에 찾고 묻고 하며 주변을 샅샅이 뒤지다 보니 벌써 해는 잠자리를 찾아 서산으로 고개를 숙이고 땅거미가 골목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니 한편으로 이러다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가로등도 슬슬 기지개를 켰지만 가랑비에 젖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지금 내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번지를 보면 바로 옆인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번지가 많이 다르니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변의 집들을 이 잡듯이 일일이 확인하며 찾던 도중 산
비탈 한 곳에 사람이 겨우 비켜 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 마지막에 있는 낡은 집이
번지가 일치하였다.
슬레이트 지붕에 대충 지어 곧 쓰러질 듯 낡은 집이었는데 마침 대문이 잠겨있지
않고 조금 열려 있어 무작정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할 정도로 처마는 머리에 닿을 정도로 낮아 머리를
조금 숙여야 할 정도였다. 막상 들어서니 그 좁은 집에도 몇 가구가 사는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여러 방에 전등불이 켜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계십니까? 계십니까?”
하고 몇 번 큰 소리로 부르니 덜커덩덜커덩 거리며 억지로 열리는 듯 문짝이
악을 쓰는 소리와 함께 나이가 제법 든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누구요 어떻게 왔소” 하며 이 시간에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늦은 시간에 낯선
사람이 들어서니 몹시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주소와 이름을 밝히며 찾아
왔다고 하니 손으로 가리키며
“저 쪽 끝 방에 사는 처녀 같은데 그리로 가 보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가르쳐 준 방 앞에 가서
“계십니까?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하고 몇 번 부르니 방문이 열리고 나오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이 곳까지 내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지 그저 방 문을 연 채로 처음
보는 듯 한참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바라보더니
“아니 오빠 어떻게 여기를 알고 다 찾아왔어”
“추운데 빨리 들어와” 하며 반갑게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두어 평 될까 말까 하는 좁은 방에는 비키니 옷장과 옆에 개어둔
이불, 옷걸이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몇 가지의 옷 그리고 조그만 경대와 화장품
몇 가지 등의 살림살이는 보는 순간 그녀의 고달픈 도시 생활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주소를 들고 달동네를 뒤지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보살피지 못한 이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아 미안함이 앞섰다.
너무 뜻밖이었는지 마주 보고 앉았지만 갑작스러운 방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로 선웃음만 짓고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찾아 온 것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한참을 바라보다 이윽고
“오빠 어떻게 이곳을 다 찾아왔어 찾기 쉽지 않을 텐데 주소는 어떻게 알고..”
“응 집에 들러 아버지께 주소를 받았어 지금 마지막 휴가라 시간도 있고 해서
올라왔어 집에는 형한테 들린다고 핑계 대고… 그렇게 됐어…”
너무 힘들게 찾았기에 안도감과 너무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은데 얼굴을 대하니 막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볼 것도 없는 좁은
방의 천정이나 벽으로 멋쩍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오빠 너무 초라하지?”
“아니 뭐 객지 생활이 다 그렇지 뭐…”
생활력이 강하다고 생각했기에 잘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니 가슴 한켠이 형언조차 힘든 쓰림이 밀려왔다.
너무 보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는 말은 목이 메어 가슴 에 갇혀 나오지도
않았고 많은 말 대신 그냥 와락 껴안고 오래도록 그렇게 있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안부만 묻는 그저 겉도는 얘기만 하고 있자니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자
“오빠 배고프겠다. 잠깐만 있어 봐 내가 뭣 좀 사 올게”
“아냐 됐어 밖에 어둡기도 하고 밖에 비가 오니 그냥 있어”라고 만류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굳이 밖으로 나갔다.
벽에 기대어 우두커니 앉아 미안한 마음에 돌아보지 못했던 좁은 방안을
다시 보고 있는데 맞은편 비키니 옷장 밑에 뭔가를 발견하였다.
받은 편지지인지 보내는 편지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지 몇 장이 접혀 있는
채로 놓여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 해도 자꾸만 그 편지지에 눈길이 갔고 그녀의 사생활이니만큼
당연히 편지를 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놈의
호기심은 도저히 몸은 그냥 두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랬다.
그녀가 밖에 가는 것을 극구 말렸어야 했다. 아니 편지를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 편지를 끝내 읽지 말았어야 했다.
편지를 집어 들고는 그녀가 오기 전에 빨리 보고 제 위치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읽어 내려가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지고 시베리아
같은 차디찬 허허벌판에 홀로 외톨이가 되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00에게로 시작되는 편지 내용은 그녀가 그 누군가를 잊을 수 없어
끔찍이도 사랑하는 마음을 구구절절 애틋하고 애절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왜 갑자기 나와 연락이 끊겼으며 서울에 올라오게 된 경위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제야 모든 수수께끼 다 풀렸다 그녀 동생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녀가
면회 왔을 때 왜 그랬으며 나를 피할 수 에 없었던 사정과 이런 시간들이
제법 흘렀다는 것을...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다 그녀의 마음에는 이미 나의 존재는 없었던 것이다. 그저 어릴 적부터
알았던 동네 오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를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랑했는데 그런 그녀의 마음은 이런 내 마음을 받아
넣어야 할 공간은 조금도 없었고 모든 마음이 송두리째 다른 남자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허무했고 세상이 싫어졌다. 지금까지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이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함께 꿈을 이뤄나가자고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 사이에 그런 시시콜콜한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고 기다려
주고 있으리라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이냐 도대체 그녀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말과 행동은 또
무엇이었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 순간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참담하였다. 그
자리에서 당장 죽고 싶을 정도로 처절히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그 오랜 시간을 앞으로 그녀와 함께 행복하며 지낼 미래를 꿈꾸며 지금까지 참고
한 없이 기다리며 지냈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이제 제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리란 꿈을 가득 안고 그렇게 손꼽아
왔는데 모든 것이 나만의 착각으로 시작하여 만들어 낸 어처구니없는
몽상이었단 말인가 내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는 것을 안 그 순간은 머리 속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었고 심장을 후벼 파듯 너무도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녀가 오기 전에 손에 쥔 편지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했고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충격과 얼굴 표정도 그녀가 외출하기 전의 자리로 되돌려야만 했다.
그저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머리 속은 까맣게 짙은 암흑으로
덧칠되어 갔다.
‘왜 편지를 봤을까’하는 자책감도 잠시 ‘왜 기다리지 못했어 왜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내 마음을 그렇게 몰랐어’ 하며 그녀를 잡고 목 놓아 울며 이유를 묻고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마음이 돌아 선 아니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른 남자가 가득 차지하고
있는데 무얼 어찌한단 말인가 이제 모든 것은 되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해하는 그녀에게 괜한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녀가 지금 너무도
행복해 하니 그럼 그걸로 됐다.’
비록 지금 이 순간까지 너무나 사랑하고 그 오랜 시간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였지만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을 빌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인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채 정리하지 못한고 넋이 나간 듯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었고 어떤 것도 물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지난날의 이야기나 제대 후
어떻게 할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모든 대답은 조금의 의미를 둘 수 없는
지나가는 바람 같은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날밤 둘이 누우니 몸이 닿을 정도의 좁은 방이었지만 자꾸만 편지의 글이
떠올라 도저히 감히 손 조차 잡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불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에 천정만 응시하며 그녀 몰래 베갯잇에 소리 없는 눈물을 흠뻑 적셔야만 했다.
오히려 행여 그녀가 손이라도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였지만 그녀 역시
약간은 등을 돌린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잠을 자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떠난 것이다. 앞으로 이 아픔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야 하나
생각하니 몸뚱어리가 공중에 끝없이 떠 올랐다 지옥 저 끝까지 수 없이 반복하며 산산조각 날 때까지 내동댕이쳤다.
다음 날 어떤 말을 하고 헤어졌는지 기억조차도 없었고 형 집에도 들릴 마음도
없어 곧장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그녀와는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갈림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참담한 현실의 운명 앞에 속절없이 벌거벗은 채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이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가슴 쓰린 상처를 눈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아있을지 언정 그리고 비록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닐지라도 조금의 원망도 없었고 오로지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길 빌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귀대하면 며칠 후 전역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군 생활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잊히지 않고 아물지 않을 것만 같은 상처 가득한 시간은 함박눈이
쌓여 덮듯 그렇게 파묻히고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흐르는 강물같이
비웃으며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지금 북부 터미널인데 잠깐 나올 수 있어 곧 시골로 내려가는데 형 집이
부근에 있어 잠깐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알았다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하고는 주섬주섬 대충 옷을 걸쳐 입고는 서둘러 터미널로 걸어갔다.
입대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가기 전에 만나려고 왔구나 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나섰다.
터미널에는 여행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 멀찍이 서성이는 동생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는 동생에게로 다가서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당연히 동생 혼자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함께 서 있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 날 이후
연락을 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당연히 나란 존재는 까마득하게 잊고 서울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녀가
왜 이렇게 동생이랑 같이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 동생이
“형 누나가 어제 집에 찾아왔었는데 형 보고 싶다고 해서 오늘 같이 올라왔어
그래서 이렇게 오게 된 거야 그리고 이제 입대할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고
겸사겸사 해서 왔어”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형 이제 임무가 끝났으니 나는 바로 내려갑니다. 누나 나 갈게요 그럼 형이랑
얘기 많이 하세요”
하고는 휑하니 개찰구로 향해 나가 버리는 것이다.
동생이 떠나고 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머리
속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돈상태가 되어버렸다.
부근 다방에 마주 앉아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얼굴만 쳐다보며 멋쩍은
웃음만 날렸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그녀는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빠 왜 그동안 연락을 안 헸어? 난 언젠가 오빠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가 그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기에 이제 와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가슴만 답답했다.
그 편지 때문에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고 함께 했던 모든 것을 가슴에 지우려
발버둥을 치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다고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으랴 이제 와서 새삼 편지에 관한 말을 꺼낼 수도 없고 너무 허탈하여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니
“오빠 난 오빠가 언제나 내 곁에 있으리라 믿었어 그런데… 왜?”
동생과 버스를 타고 오며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다소 원망스러운 말투로 나를
올려 보며 말 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잊을 수 없어 그리움을 가슴 에 하나하나 접어왔던 그녀가 이렇게 내 앞에 찾아 왔고 다시 보는 순간 겨우 눌려 놓았던 지난날의 감정이 봇물 터지듯 솟구쳤지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내 곁에는 몇 개월 전 아픈 상처를 감싸주고 평생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여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말이든 변명일 수밖에 없으니 아무 말도 할 수도 없었고 너무도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아 심장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편지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만 느낌상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나를 찾아왔지만 이제 서로가 너무나 어긋나 버린 현실 앞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숨겼던 감추었던 그녀의 지난날의 이야기는 다 이해할 수
있고 아무런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주지 못한 것이 그녀에게 너무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
가슴에 어떤 여인도 넣지 말고 조금만 아니 차라리 평생을 그리움을 안고
살았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자책만 가득할 뿐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토록 가슴 아픈 일이 없으련만 이제 와서 그녀를 선택한다면 또 다른 눈물을 낳게 되니 아픔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모든 것을 가슴속에 묻고 어디에 살던 서로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것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편지에 관한 말은 끝내 가슴 속에깊이 넣어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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