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집에 살아 보셨습니까?-
올해 대구에 내려온 지 23년째로 13여 년 전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였다.
이렇게 집을 갖기까지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었다. 사글세부터 전세를 전전하며 가까운 곳은 리어카로 나르기도 하며 열 번 가까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었다.
아마 전에 살던 안양이었으면 아무래도 수도권이니 내 형편에 아직까지 집을 장만 못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서민들이 빈 손으로 시작하여 내 집을 장만하기까지 나와 비슷한 혹은 더 많이 그렇게 이사를 다녔을 것이다. 그 살았던 집 가운데 지금도 잊지 못할 전세 집이 있었다.
우리 가족의 첫출발은 이렇게 시작을 하였다.
처음에는 사정상 처갓집에 잠시 지내다가 직장 관계로 안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첫 신혼살림은 너무도 단출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톤 화물차에 이삿짐을 실으니 장모님이 사주신 5단 서랍장과 양은솥 하나, 작은 냄비 두 개, 그릇 몇 개와 이불 그리고 얼마의 옷가지가 전부로 화물차의 절반도 되지 않는 살림살이였다.
돌이 지나지 않은 큰 애는 무릎에 앉히고 세 식구는 전혀 연고가 없는 낯 설은 땅 안양으로 향하였다. 신혼이었기에 앞으로 펼쳐질 희망과 행복감에 대한 부푼 기대 보다는 걱정과 약간의 긴장감이 교차되는 다소 찹찹한 심정이었다.
이렇게 첫 보금자리는 안양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제법 오래
된 한옥이었다. 자그마한 마당의 중앙에는 몇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동식 펌프가 있었다.
부엌이라고는 거북이 등껍질 같이 떡떡 갈라진 나지막한 시멘트 부뚜막은 조금만 충격에도
툭툭 깨지며 떨어지기 일쑤였다. 바닥은 흙바닥이라 조금의 물이라도 흘릴 경우 질퍽질퍽하여
수시로 부엌에서 음식을 해야 하는 집사람의 신발에는 늘 젖은 흙이 항상 묻어 있었다.
방은 셋이 겨우 누울 정도로 좁았고 발을 뻗으면 아래 벽이 발에 닿을 정도였다. 한쪽 윗목에는 조립식 옷장인 비키니 옷장을 두였는데 그로 인해 방 길이가 짧아지니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큰애를 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의 벽지는 위쪽에만 겨우 붙어있어 문을 열고 닫으면 그 작은 바람에도 파도가 넘실대듯 벽지가 출렁거렸다.
벽에 기대거나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벽과 벽지가 붕 떠있으니 그 사이로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구석에는 모래와 흙이 떨어져 수시로 쓸고 닦아야만 했다.
그곳에서 일여 년을 살다 얼마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둘째가 태어나니 도저히 네 식구가 기거하기에는 너무나 비좁았기 때문이었다.
월세가 조금 비싼 곳이었으나 전에 살던 곳에 비해 방도 넓고 마당도 제법 넓어 애들이 놀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또 세를 들어 사는 집이 우리뿐이라 전에 살던 곳 보다 조용하기도 하여 지내기에는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나았다. 하지만 주인집 안방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아이들 장난치거나 우는 소리 때문에 늘 주인집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살다 그간 조금 모은 돈과 시골에서 보내준 돈을 합해 난생처음으로 전세방을 구하여 이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전세방이라고 얻은 곳은 단칸방의 반 지하로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었고 그곳에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면 성인 무릎 높이 보다 좀더 낮은 곳에 방이 있었다. 부엌은 작은 싱크대 한 개를 겨우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이 비켜가기도 힘든 좁은 곳이었다. 통로 외에는 마당도 없었고 세 가구가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공동 화장실 등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야 많았지만 다달이 줘야 하는 월세의 부담에서 해방된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었다.
그 집에서 생활한 지 1여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속옷의 등 쪽이 너무 축축하게 젖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먼저 바닥에 있는 솜을 넣은 두터운 요를 손으로 만지니 물을 갖다 부은 듯 젖어 있기에 분명 막내가 오줌을 싼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직 막내가 어려 밤에 실례를 했나 하고 깨워서 확인을 하였으나 집사람도 아이들도 모두가 바닥에 닿은 등 쪽 내의가 똑같이 젖어있는 것이었다.
깔아 놓은 요 전체도 그렇고 속옷도 젖어 있었으나 지린내가 나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하고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치운 뒤 장판을 걷었다. 그런데 장판을 걷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멘트 방바닥이 온통 젖어 있었고 장판 뒤 쪽에는 물 방울이 흠뻑 묻어 있었다.
그 날은 영문을 몰라 이불과 요를 말리기 위해 밖에 늘어놓고 방안을 대충 정리하고는 장판을 최대한 걷어 한쪽 구석 말아 놓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바닥을 말리기 위해 연탄불 아궁이를 최대한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니 30여분이 지나니 바닥의 물기가 점차 없어졌다.
하지만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원인을 파악하려 방 구석구석을 뒤져 확인해 보고 집 밖에도 세심하게 살펴보았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장마 철도 아니고 최근에 비가 온 것도 아니니 도대체 뭣 때문에 갑자기 그럴까 하며 그렇게 며칠간을 지냈다. 원인도 모르겠고 계속 젖고 말리고 반복을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3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주인도 현장을 직접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할 뿐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누수가 된다고 하면 보수비용이 들어갈 것이 뻔하니 오히려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어쩔 수 없이 주변에 건축설비를 하는 분을 찾아가 왜 그런지 알아봐달라 하였다. 다음 날 설비하시는 분이 오셔서 방안의 이곳저곳과 집 주변을 살펴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다시 집 밖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혹시 옆에 집 지은 지 얼마 안 됐지요?”
“맞아요 그런데 옆 집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하고 물어니
“내 판단에는 아무래도 옆 집 때문인 것 같은데 혹시 옆에 집 지을 때 진동이 심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예 그랬어요 지하를 제법 파 내려갔는데 그때 많이 심했어요”
하니까 설비 업자는 확신이 선 듯
“아마 그 공사 때 진동으로 인해 방수층이 깨져 누수가 되는 것 같은데요”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그랬다 사실 몇 달 전 퇴근을 하니 방에 귤 한 박스가 놓여져 있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이 과일을 사지도 않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기에 의아하게 생각하며 집 사람에게 물었다.
“웬 귤이야 그것도 한 박스씩이나?”
“응 그거 옆집에 공사하시는 책임자 같은데 당분간 소음 때문에 시끄러워도 이해해달라며 주고 갔어 우리 집 만 아니고 주변에 다 돌리는 것 같던데”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까지 미안하다고 미리 입 막음을 하는데 별 방법 없었다. 공사가 다 끝나도록 심한 진동과 소음에 시달렸으나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귤 한 박스 공짜로 먹은 것 때문에 그렇게 두어 달 넘게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집 공사로 인해 방바닥이나 벽이 균열이 가서 이렇게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황당하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집에 가서 항의해서 될 일도 아니니 별도리가 없었다.
다시 주인집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렸으나 주인아저씨는
“그래요 그렇다고 당장 해결 책이 없으니 계약기간까지 살다 방을 비우고 나면 그때 방수 공사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태무심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귀찮다는 투였다. 게다가 “정 지내기 힘들면 당장 전세금을 내줄 입장은 아니니 그전에 나가고 싶으면 알아서 세를 놓고 나가시든가,,.” 하고는 매몰차게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방을 누가 들어올 것이며 방바닥이 누수된다는 사실을 감추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고 나간다 말인가?’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당장 이사 갈 형편도 안되고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식구들과 지낼 수 없어 손수 보수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 아침 웬만한 방안 살림은 장롱에 넣거나 5단 서랍장에 위에 올려놓고 일부는 밖으로 들어낸 다음 장판을 걷어 한쪽으로 감아 놓고는 방수 공사를 하였다.
하지만 방수 공사라 해봐야 거창하게 바닥을 깨고 다시 바르고 할 형편이 안되니 방수 코팅제를 사서 몇 번이고 바르고 말리고 하는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건 효과가 있었는지 얼마간은 뽀송뽀송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열흘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TV를 보고 있는데 뒤 쪽 벽에서 물 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져 장판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방바닥에서 물이 스며 나왔지만 방수제를 발라 그나마 그럭저럭 지낼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젠 벽에서까지 새어 나오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물이 새어 나오는 갈라진 틈에 실을 꾹꾹 눌러 끼워 놓고 실 한쪽 끝부분을 아래로 내려 조그만 그릇을 받쳐놓으니 그릇에 물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이젠 벽에서 물이 새어 들어오니 수영장 한 복판에 벽돌집을 쌓고 지내는 그런 기분이었다.
며칠 뒤부터는 바닥에도 벽에도 동시에 물이 스며 나오니 이대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집주인에게 다시 상황을 말했으나 아예 와 볼 생각도 않고 돌아오는 대답은 전번과 똑같았다.
남의 집에 살 수밖에 없는 설움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당장 방법이 없으니 고민에 고민을 했지만 도저히 이사할 형편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후 국경일과 겹쳐 며칠 쉬게 되는 날이었다.
집사람과 상의하여 방안의 모든 살림살이를 밖으로 들어내고 밑 쪽의 벽지는 뜯어내고 장판은 완전히 걷어 낸 다음 방 전체를 방수 공사 아니 방수제를 하루 종일 몇 번이고 바르고 말리고 하였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세간이지만 밖으로 내고 다시 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사하는 모습을 집주인은 보고도 모른 척 지나치니 화는 났지만 어떡하랴 항의해 본들
오히려 당장이라도 방을 빼라고 하면 그 돈으로는 당장 갈만한 곳이 없으니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한바탕 공사를 끝내고 ‘이렇게 해서 방수가 제대로 될까?’ 하고 다소 걱정은 되었지만 한 동안은 아무런 일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온도 오래가지 못했다. 밖에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고 몇 번이고 방수제를 발랐지만 근본적인 보수를 하지 않았으니 두어 달 지나자 또 여기저기에서 물이 새어 들어왔다.
이제는 정말 이사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해결책도 대안도 없어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능력이 없어 이런 상황 속에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스러웠으며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 등등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이렇게 자책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여러 가지로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해서 제법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술에 취한 채 멍하니 방바닥만 내려보고 있으니 집사람은 이미 눈치를 챘는지 아무 말도 않고 옆에 돌아 앉아 긴 한숨만 내쉬었다.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장판을 들추고 보니 늦은 밤도 아닌데 이미 바닥에는 물기가 차고 있었다.
집 사람은 “새삼스레 왜 들추는 거야 낮에 장판을 걷어 내어 말렸고 나도 할 만큼 했어” 하며 불만 가득한 투로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이 집 사람이나 애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고 참담하여 고개만 푹 숙인 채 방바닥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술기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에이 어차피 이판사판 아니겠어” 하고는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가 연장 통을 뒤져 큰 망치와 정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집사람은 영문을 몰라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 도대체 왜 그래 뭘 어떡하려고 술 마셨으면 그냥 자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하고 역정을 내며 손에 든 망치를 뺏으며 말리는 것이었다.
“아니 그냥 넵둬 봐 내가 생각이 있으니 그냥 지켜 보기만 해” 하고는
극구 말리는 집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방 문 입구 쪽 방바닥의 시멘트를 깨고 바닥을 파기 시작하였다.
집 사람은 내 의중도 몰랐지만 한 밤중에 쾅쾅대는 소리에 주변에서 항의 할 것이 염려되어 자꾸만 말렸다.
하지만 “가만있어봐 이사 갈 형편도 아니고 이대로 살 수도 없으니 도대체 방바닥 밑이 어떤지 파 봐야겠어 그리고 주인집에서 뭐라고 하면 메우고 시멘트 발라 원상복귀시켜놓으면 될 것 아냐 그러니 걱정 말고 그냥 있어” 하고는 계속 방바닥 시멘트를 깼다.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자꾸만 말리던 집 사람도 내 고집에 포기했는지
“나도 모르겠으니 이제 마음대로 해’ 하고는 아무 말도 않고 돌아 앉아 TV만 쳐다보았다.
보일러 호스가 지나가는 자리는 그 열로 인해 표시가 나니 그곳을 피해 가급적 벽 쪽의 한 구석을 팠다.
어른 주먹 크기 정도의 넓이로 4-5센티 정도 두께의 시멘트를 깨고 시멘트를 걷어내자 흙바닥이 보였고 그 경계면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깨진 시멘트 조각을 들어내고 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물에 흠뻑 젖은 진흙을 파내고 나니 그곳에는 우물처럼 금세 물이 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니 도대체 이게 뭐야 지하수도 아니고…”
하며 놀라 소리치니 TV를 보고 있던 집사람은 이 황당한 광경에 더 기가 막힌 듯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파낸 넓이가 그리 크지 않아 바가지나 다른 그릇을 넣을 정도가 안되니 석유곤로에 기름 넣을 때 사용하는 주름 주유기(일명 자바라 주유기)와 고무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고무 대야를 옆에 놓고 자바라 한쪽 끝은 물이 고인 방바닥 아래로 배출구는 고무대야로 향하게 해 놓고 몇 번 압축을 하니 금방 대야에 하나 가득 물이 찼다.
그 날은 이렇게 큰 대야로 하나 가득 물을 담아 열댓 번을 퍼내고 나니 차츰 물이 고이는 속도도 늦어지고 구덩이 밑바닥 부분에 조금 비치는 정도였다.
그렇게 물을 퍼내고 나니 방바닥 전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바짝 말랐고 다음 날부터는 늘 축축하였던 이불과 속옷도 뽀송뽀송하였고 아래쪽 벽지에 습기가 차는 일도 사라졌다.
그러니 자연 매일 아침이면 늘 일과처럼 하던 이불을 말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술김에 한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파 놓은 구덩이야 그리 크지 않으니 장판으로 덮어 놓으면 되고 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사를 하지 않고 당분간은 이대로 살 수 있으니 집 사람도 나름대로 만족하여 그냥 지내기로 하였다.
다만 매일 저녁 이부자리를 깔기 전에 꼭 한 대야 정도의 물을 퍼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방바닥에 석유도 아닌 물을 매일 퍼가며 그 집을 탈출하기까지 2여 년을 그렇게 보냈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황당하기도 했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그런 환경 속에서 고생시킨 가족들에게 지금도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늘 앞선다.
'가던 길을 멈춰야 할 때 > 돌 위에 앉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甲)의 횡포 (0) | 2015.03.17 |
---|---|
그리움의 강 저편에서 (0) | 2015.02.06 |
뻥이 부른 결과 (0) | 2015.01.16 |
그리운 선생님! (0) | 2014.12.16 |
작은 배려 (0) | 2014.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