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동생이랑 뒷 산을 올랐다
몇 년 전에 뿌려 놓은 산삼 즉 장뇌삼을 캐서
아픈 형수를 주겠다고 하니 미안코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이곳 저곳 산을 헤집고 다니며 7년 이상 된 산삼 예닐곱 뿌리를
캐서 내려 왔다 바람 한 점 없어 그런지 땀이 비오듯 하였다
뒷 밭을 한 바퀴 돌아 보고 내려 오니 그 사이에 어머니께서
현충원에 갈 준비를 이미 다 해놓으셨다
아침에 산에 가기 전에 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뵈니 마음이 짠하였는데....
대전 현충원에 도착하니 9시를 조금 넘었다
목비 대신 석비로 바뀌었고 동생와 어머니는 석비를 정성들여 닦는다.
어머니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시는지 석비를 부여 잡고 눈물을 훔치신다
갖고 온 음식을 차려 제를 올리고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청주에 살고 계시는 막내 이모를 만나 뵙고
점심을 그 곳에서 먹는 것이 어떠냐는 동생의 의견에 모두 그렇게 하기로
하고 11시 쯤 현충원을 나섰다
아버지 장례식 때 잠시 뵌 것이 30년도 더 되었는 같았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막내 이모님도 이제 얼굴에 세월의 고달팠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번에 처음 뵙는 이모부(?)도 자리를 함께 하여 삼계탕을 시켜 놓고
술 한잔을 곁들이며 그간의 못다한 이야기 꽃이 만발을 한다
간간히 막내 이모님의 눈가에는 눈물을 적셔 애둘러 화제를 바꾼고 하였다
서로가 눈에도 마음에도 터질 듯 잔뜩 머금은 물 풍선 같은 눈물을 터뜨리며
어찌 감당할까 그냥 참고 농축 같은 엷은 눈물 눈가에 묻히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또 지나온 시간들의 수 많은 사연들
오늘 짧은 시간에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그저 모든 것은 가슴에
묻고 세월의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하지 않을까
막내 이모님은 우리가 찾아 온 것에 대해 기분이 좋으신지
술이 거나하게 취하시도록 드신다 오늘 내려 갈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밤새 이런 분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촌에 오니 또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해야 하니
혼자 계셔야 하는 어머니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 이래 걱정 저래 걱정하며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구미를 들러 차를 몰고 대구로 올라 오면서 저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얘들이랑 상의해서 결정하라 했다 내일은 막내가 서울로 면접을 보러가니
만약 취업이 되면 앞으로 네 식구가 모며 회식을 할 기회도 잘 없을 것 같고 해서....
수술 후 처음으로 횟집에 갔다
수술한지 두 달이 넘었으니 회는 이제 먹을 수 있어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 오랜 만에 회를 접하는 탓인지 아니면 아직은 먹기가 그런지
약간은 젓가락을 맴돌리며 주저주저한다.
수술 전에는 좋아했었는데 아직 장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선뜻 먹기가 그랬나 보다
저녁을 먹고 운동삼아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는 집으로
와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고 정리하고는 피곤함 몸을 눕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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