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2

내 시계가 멈춰지는 날에

헤세드다 2017. 4. 25. 09:26




 --내 시계가 멈춰지는 날에


파아란 하늘 흰구름 몇 조각 떠다니면 좋지만

별 빛마저 삼킨 칠흑 같은 밤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할 거야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이불 삼아 덮어도 좋지만

살을 에는 눈보라에 온몸이 꽁꽁 얼기 터지기도 할 거야


더할 나위 없이 잘살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휘청이면서도 한 발짝 한 발짝 나름 걸어왔으니

아쉬움도 미련도 후회도 남을 것이 뭐람

설령 있다 한들 다 부질없는 감정의 찌꺼기일 뿐


그 날은 불현듯 느닷없이 오기도 하겠고

조금은 미리 짐작은 할 수도 있고

어쩌면 피치 않게 날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모든 것은 운명이겠지


삶의 길을 걸어오며 그 무엇을 위해

참고, 기다리고, 미뤄오면서

내일, 나중에, 다음에 그랬던 적이 많았지

하지만 이젠 이 순간이 전부야


다시 기회를 준다?

아니야 아니야 절대 바라지도 않아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다시는 새롭게 시작할 자신(自信)이 없어

어쩌다 괜찮은 오솔길을 따로 낼 수는 있겠지만

신작로(新作路)를 절대 만들 수 없음을 너무 잘 알아

오히려 깊은 가시덤불 속이나 아집(我執)의 올무에 사로잡혀

주변이 더 힘들어지니 후회의 덩어리만 더욱 커질 뿐이야


내 시계는 멈춰도

태양은 눈부시게 떠오르고 달도 별도 밝게 빛날 것이며

바람 불어 꽃도 피고 지고 새도 울고

곳곳에 새 생명이 태어나고 파도는 해변을 유유자적 거닐 것이며

그렇게 여느 때처럼 시간이 구부러질 이유도 없고

모든 것은 한치의 흩트림 없이 가던 길을 가겠지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걷거나 차를 몰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식구들과 오붓이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흔들기도

주린 배를 부여잡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심신의 통증으로 괴로워 아파하기도

이렇게 희망과 좌절, 사랑과 이별, 행복과 고통, 웃음과, 울음 등등

모두 각자 뒤범벅된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상을 보내겠지

또 어쩌면 어디선가 같은 길을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준비? 준비물이 있어야 하나?

더러는 보상보험도 적금도 들며 준비도 했겠지만

난 여태 욕망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아오기 급급했으니

그 죄악(罪惡)으로 쌓인 대출이자만 잔뜩 지고 가야겠지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가슴 저민 것은

내가 알았던 몰랐던 나로 인해 받은 수많은 상처들

그 모두의 마음속을 씻겨주지 못했다는 것이지


태어날 때 이유를 몰랐으니

돌아가는 이유도 알 필요가 없지 않겠어

어찌됐건 누구나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이 길

세상이 이 보다 더 공평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짧디 짧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일생을 보기도  

어쩌면 그런 순간의 기회조차도 없을지도 몰라

앞서 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껏 궁금했던 모든 비밀을 알게 되겠지


비록 너털웃음은 아닐지라도

미소일지 실소일지 그냥 웃음 한번 짓자꾸나

어쩌면 주절주절 이런 글 조차 참 구차스러운 일이겠지

그래 그렇다 모든 것이 그렇고 그럴 뿐이지

내 시계는 여기서 이렇게 멈춰지고 헤어질 시간이니

! 이제 가보자 자아(自我)가 결박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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