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작은 돌탑들/삶의 노래(詩)..2

깊은 그녀의 방

헤세드다 2017. 1. 4. 09:33




--깊은 그녀의 방--


 

슬립(slip) 란제리 같은 립스틱은

창 밖의 손짓을 응시하고

화려한 네온싸인 같은 매니큐어는

전날 밤 웃음의 기억에 취해있다.


모두 불시의 외출을 알고 있는 듯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아래위를 힐끗 흘기며

강한 거부감을 굳이 감추지 않는구나


언제부터였는지 궁금도 않지만

깊은 그녀의 방은

사물사물 안개가 산을 집어삼키듯

곰비곰비 드리워진 베일(Veil)

멈칫멈칫 망설이다 발걸음 돌려

베란다를 짙은 담배연기로 채우고

수시로 밤하늘 향해 선문답(禪問答)한다.


이상(李箱)은 날개를 쓰면서

누구를 생각했을까?

무엇을 갈구했을까?

어떤 자유를 바랬을까?

그래서 날개를 달았을까?


날개의 주인공처럼

전혀 무기력하지 않지만

완전히 무기력해져 있고

전혀 권태롭지 않지만

철저히 권태로워져 있다.


장지문과(障子) 콘크리트 벽

과거와 현재의 차이일 뿐

날개는 늘 새로 돋고

누군가는 그 꿈을 꾸고

때론 그 깃털을 남김없이 몽땅 뽑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