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멈춰야 할 때/돌 위에 앉아 ...2

고해성사

헤세드다 2015. 5. 11. 15:29

 

 

--고해성사--

나른한 봄날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질벅대는 깊은 늪지대 속으로 빨려 들어 딜레마란 새빨간 괴물에게 발목을 잡힌 채 몸도 마음도 어둠 속으로 한없이 축축 가라앉아 무기력함만 더해간다. 고심과 방황의 끝은 어디까지 언제까지 될는지 그 끝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다.

 

지금 심정은 그렇다. 시를 짓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과연 무얼 의미하는가? 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방랑의 봇짐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너무 부족하기에 더욱 매진해야 함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렇게 쉽게 결론이 났다면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고 또 돌아봐도 찌그러져 빨갛게 녹슬어 버려진 분유 깡통 같아 힘주어 마저 찌그린 다음 힘껏 걷어차고 싶은 마음뿐이다. 차라리 이쯤에서 모든 것을 접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니면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질을 갖추기 전에는 언감생심 아예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그저 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져 가니 자책 가득한 까만 한숨만 내뿜고 있을 뿐이다.

 

나름대로 공부하였다지만 그것은 어디에 말도 꺼내지 못할 조족지혈(鳥足之血)의 문학적 소양(素養)에 불과할 뿐 돌이켜 보면 부족한 만큼 부단히 노력도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자신을 속이며 얄팍한 술수를 부려온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먼저 시나 글에 대해 논하기 전에 나는 과연 문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해하며 그에 대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갖고는 있는가? 자신을 향해 무수히 던져지는 이 질문에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부터 깊이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한비문학 월간지 2014 11월호의 특집 코너에 실린 앉아서 나눈 문학이야기’(1977년 김원중 교수님께서 사회를 보시고 여러 시인들과 현대시에 관한 토론한 내용)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었다.

 

현대시의 특징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토론한 내용이었는데 참석한 시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깊게 와 닿았고 공감대를 가진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 부분에 대해 전부터 늘 고민거리로 다가와 방향을 잡지 못해 캄캄한 미로를 걷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시인가? 좋은 시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에 대해 다른 시인들의 시나 수필 읽고 이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였었다.

 

보편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누구나 읽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 다른 방향은 문학평론가나 시인들만 공유할 수 있는 시나 글 즉 문학 전문가들이 읽어야만 의미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속에 의미를 감춰두며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개개인의 문학적 소양을 떠나 작품 자체만으로 비교한다면 사람마다 성격과 품성이 다르듯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같은 스승에게 배운 문하생이 비슷한 사조(思潮)로 흐를 수는 있겠으나 결국 자신만의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개성이라 해야 할까 각자 갖고 있는 색깔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시나 글에 즉 작품에는 지은이의 모든 것이 내포되어 스며들어 있다. 마음속에서

산고 끝에 우러난 글이니 그 결과는 당연히 지은이의 얼굴이자 마음인 것이다.

나 글을 읽어 보면 지은이를 대하지 않고도 글 속에 작가의 성격이나 성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천성(天性)이 쉽게 바뀌지 않듯 글 또한 그런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과 노선을 드러낸다 하여 보편성을 뛰어넘어 일반인은 물론이오 문학 전문가 조차 이해하기 힘든 작품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어떻게 생각하면 기존의 틀을 깬 파격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면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자적이며 독창성이란 명분 아래 자신만의 밀어(密語)를 사용한 독선적이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참으로 어떻게 방향을 정해 나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문학적 자질과 품격이 어느 정도 수준 혹은 경지에 다다른 문인인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 감히 내가 현시점에서 방향성을 운운하며 고민한다는 자체가 과연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때때로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도 깊은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앞서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배부른 고민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 것에 대한 방향성을 고심하기에 앞서 지금 시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즉 마땅히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기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비문학 2015 4월호 게재 내용 중 지역문화 순례 코너에 박목월 시인을 소개하는 채수영(한국문학정책연구소) 소장님의 글 도입부를 읽으며 나 자신을 향한 분명하고도 확고한 질책 같아 차마 얼굴을 들기가 민망할 정도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글 도입부에 기본적인 자질 취약, 취미활동, 어중이떠중이, 감동과 거리가 먼 잡동사니, 3류 글쟁이, 추태, 작품발전을 저해하는 주범, 글로벌적인 프로 근성의 부족이란 이 모든 단어는 나의 현주소를 철저히 파악하고 반성하라는 진심 어린 충고의 회초리였던 것이다. 매서운 질책과 성찰의 회초리이니 회피할 이유가 없이 나는 기꺼이 종아리를 걷어야만 했다.

등단하였다 하여 책을 발간하였다 하여 시인이고 수필가라 할 수 있을까? 시인이라 해서 모두 시인은 아닌 것이다. 언젠가부터 시인, 수필가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스스로의 목을 죄어 오는 굵은 동아줄과도 같이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웠던 것은 돌이켜 자신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스스로를 기만하고 합리화해 온 결과인 것이다.

 

이미 정비나 폐차의 심각한 고장의 징후가 여러 군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운행을 해 온 것이며 이는 나 자신 보다는 외부에서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렇다

과연 나는 그런 타이틀을 스스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시나 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뒤돌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단하는 방법에는 각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 유수 문예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주최하는 문학대회에서 입상하거나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시행하는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할 수 있고 요즈음에는 on LINE를 통해서도 많이 등단한다고 한다.

이렇듯 각종 문예지를 통해 매년 수많은 시인과 수필가를 양산하지만 문제는 우수죽순처럼 생기는 공신력 없는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였다 하여 그 모두를 시인이나 수필가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자질과 자격을 떠나 과연 그렇게 양산된 작품의 양적의 문제가 아니라 시라고 수필이라 언급조차 부끄러운 질적인 문제가 심히 우려될 정도의 상황이 불거지니 여기저기에서 우려와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국문협에 등록되어 있는 각종 문예지에 대해 객관적 등급으로 나눠 ON LINE에 배포될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이는 공인된 기관에서 정한 등급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객관화되어 관계자와 당사자들은 인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비문학 2015 4월호 채수영 소장님이 지금의 작태에 대한 기탄없는 쓴소리가 나 자신을 향한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지 특정 문예지나 어떤 대상을 거론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아니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기도 급급하기 때문이며 고해성사란 분명 내 탓만 말할 뿐이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 속에 막을 내린 K-POP 시즌 4에 아깝게 결승에서 2위를 차지한 18살의 정승환 군이 사람을 노래하고 싶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처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수로서의 자질과 자기만의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글을 쓰면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아니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가 대해 근본부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시를 짓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고 삶 속에 주변 풍경과 사람과 사람끼리 부대끼며 자신도 모르게 뭔가 떠오르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픈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비록 늦었다고는 하나 현시점에서 모든 가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내 모습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얄팍하게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껏 해 온 것이 대중에게 드러낼 수준 이하의 3류의 시나 글이 될지언정 또 감동과는 거리가 먼 잡동사니가 될지언정 여태껏 해 온 것같이 계속해 나갈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보면 지금껏 해 온 것은 시, 수필이라  하기보다는 대중성과 작품성이 이와는 거리가 먼 개인적으로 남길 일기나 비망록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수준은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까지 써온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같고 시라고 수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고 하는데 나는 작품은 고사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조차 버거워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매화꽃이 필 무렵부터 시작된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자문은 짙어지는 녹음으로 가득한 지금까지 계속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얼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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