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문 열어 드리리다
그대가 택할 수 밖에 없는 행복의 길이라면
숟가락 채 놓지 않았는데
문 앞에서 그리 서성일 것까지는 없으련만
더운 숭늉 조금이라도 마시고 떠나야지
한기가 옷 속을 제 집 처럼 파고 드는데
눈 멀고 귀는 막혔지만
늘 살갑다하여 그 놈 너무 믿지는 말아
머잖아 분명코 아귀 같은 속내 드러낼테니
외출복 화려해지고 볼 화장 진해 질 때
눈치 챘어야 하는데
눈 빛 마주 치면 더듬거리며 반길 때
한사코 말렸어야 하는데
궁색타고 연신 타박했지만
한 평생 청바지 한벌로도 웃음 잃지 않고
죽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 저 네들이 부럽다
그리 가려거던 쓰레기 통 속의 미련도 가져 가지
어차피 나서면서 문 고리 잡고 눈물은 글썽일건 뭐람
이럴거면 핏덩이 낳기 전 말없이 떠나지
새삼 뒤돌아 정 떼려 가슴 아파하나
손 잡고 따스한 방으로 이끌고 싶어도
이미 문을 열고 등 떠밀 수 밖에 없는 무능력함이란
봄 바람 눈 웃음에 홀려 사랑 틔우고
여름 바람 뜨거운 입김 서린 금반지에 없는 정 마저 챙겨 주고
가을 바람 꼬드김에 잔뜩 바람 들어 가방 챙겼지만
겨울 바람 모진 매 견디지 못해 버림 받고 죽어야 하는 가여운 여인아
웃음 뒤에 허연 송곳 이빨이 이제야 보이더냐
안개 서린 눈은 이내 빗물되어
휑한 발자국 뒤를 쫓아 하염없이 가지만
그새 핏덩이 옆에 뒷짐 지고 기웃거리는
이 놈들을 또 어찌 감당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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