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신비(神秘)-----
뭉쳐졌다 금새 풀어 헤치는 구름 한 조각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머언산이 옷들을 살짝 갈아 입는 모습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부는 바람에 모양새를 내어준 금호강물의 파형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길바닥에 떨어지는 벚꽃 한 잎이 차 유리 앞에 내려 앉기까지
길 건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온 힘을 주어 아스팔트 바닥을 뚫어져다 쳐다 보는 가로등의 불빛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도마 위에 죽은 듯이 도사리고 있는 한 줄기 대파의 운명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밥그릇 속에 힘 없이 퍼질러 있는 쌀 한 톨 한 톨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를 쳐다보는 가족의 눈빛이 내 눈에 와 닿기까지
창가에 뽀얗게 쌓여있는 먼지가 이내 잠든 체하는 모습이 내 눈에 닿기 까지
스쳐가는 바람을 이리저리 피하며 신음하는 나뭇잎의 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제 갈 길을 찾아 가다가는 지붕에 떨어져 단말마를 지르는 빗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싱싱한 딸기를 사 달라는 장사꾼의 스피커 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기까지
오랫동안 울분 속에 있다가 뚜껑 여는 소리에 내달리는 맥주병의 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기까지
짧은 신호등에 짜증나 경적을 울려대는 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귓 속을 도려낼 듯이 둔탁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기계음이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아내의 잔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하는 짓거리가 늘 마음에 내키지 않아 고언을 하는 친구의 음성이 내 귓전에 울리기까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 조각이 내 몸에 와 닿아 느끼기까지
아침에 창을 건너 내 눈에 쏟아지는 밝은 빛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음을 느끼기까지
점심 값을 치르며 주인이 건네는 말 한마디가 습관적인 겉치레임을 느끼기까지
지나고 나면 언제나 금새 아쉬운 뒤안길을 후회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느끼기까지
미사 시간 앉아 있는 내 모습이 한없는 포장으로 뒤 덮여 있음을 느끼기까지
혼자서 이 일 저 일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다 멋대로 요리 해 먹고는 웃음짓는 한심한 내 모습을 느끼기까지
나는 느끼기까지의 신비를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한 일들이 왜 지금 내게 보이며 들리고 느끼는지
한치의 오차 없이 머물고 지나감이 있기에 나는 존재함을 새삼 압니다.
인식하는 그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있는 장소에 있기에는 계산할 수 없는 오묘한 신비가 있음을 가늠할 뿐입니다.
다시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신비를
매 순간 보고 느끼며 내 자신은 그 속에 초라하게 있을 뿐입니다. 무언가 나도 그 속에 끼어 이유를 찾아 나서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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