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15. 1. 16. 16:12




--뻥이 부른 해프닝 --


가을이 이만 먼 길을 나서야겠다고 아쉬운 듯 자꾸만 뒤돌아 보며 손짓을 하던 작년 늦가을이었다. 우리 넷은 나이 차이는 있지만 평소 자주 만나기도 하고 수시로 술 한 잔씩 하며 친형제같이 마음을 터 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먼저 그 날의 에피소드를 적기 전에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평소 뻥을 치는 기준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인물 1(김대식:46) 뻥에 대한 원조이자 대가(大家)로 평소에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사실같이 뻥을 잘 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인물 2(이용수:50) 최근 몇 년 전부터 대식이에게 비밀리에 뻥을 전수받았는지 심심찮게 곧잘 흉내를 낸다.


-인물 3(권상호:52) 가뭄에 콩 나듯 뻥을 치긴 하지만 잘 속지도 않고 속아주는 척하는 연기력 또한 대단하다.


-인물 4(:55) 뻥을 쳐 본들 모두가 금방 알아 차리니 잘 하지도 않지만 곧잘 이들의 뻥에 쉽게 놀아난다.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할까 말까 생각하고 있던 오후 4시 반쯤이었다. 수시로 만나는 아지트 같은 곳으로 염료 딜러(dealer) 몇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창고가 딸린 사무실이었다. 커피 한잔을 하며 혼자 시간을 종이 접듯 보내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대식이가 도착했고 조금 후 용수와 상호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특별한 이슈(issue)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성건성 건네고 있는데 약속이나 한 듯 용수와 상호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창고 밖에서 나지막이 잠시 뭐라고 수근 대더니 상호가 사무실로 다시 들어와서는


-상호:“형님, 우리 시골(용수)에 가서 나락 좀 정리하고 올게요”


하고는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용수의 1톤 화물차에 타고는 휑하니 가버리는 것이다. 다소 의안이 벙벙하였지만 부리나케 사라지는 모습을 그냥 멍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소 의아했던 것은 평소 용수와 상호는 여러 딜러(dealer)의 주문(order)을 받아 납품을 하는 프리랜서(free-lancer )였기에 통상 여섯 시 정도 되어야 일을 마쳤다. 그런데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일을 마쳤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의아했다. 속으로‘둘이 모의하여 무슨 뻥을 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이렇게 일을 일찍 마칠 리가 없는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작년 이 맘 때도 같이 가서 밤늦게까지 나락을 정리하고 왔다는 말은 듣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빈말이라도 형님 시간 되면 함께 갈 수 있어요?라고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아마 나락 거두는 일이 힘드니까 미안해서 같이 가자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갔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바람이 스쳐가듯 둘이 떠나고 나니 남은 둘은 한참은 아무런 말도 않고 소파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런 말없이 보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그런 상황 속에 10여 분간 흘렀을까 대식이가 뜬금없이


-대식:“형님, 오늘 저녁에 형수님 만나야 해요?


라고 묻는 것이다. 참 묘한 질문이었다. 아니 퇴근하면 매일 보는 것이 마누라 얼굴인데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말꼬리 뒤에 뭔가 한 보따리를 감춘 채 무진장하고 싶은 말을 뭉텅 잘라내고 머리만 툭 던지는 표정이 역력이 느껴졌다.


-:“허 참! 당연하지 근데 왜?


-대식:“아니요 그냥 한번 물어봤어요”


서로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뜻하지 못하고 선문답만 오가는 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짧게 아무 실속 없는 몇 마디가 오간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뭔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대식“형님, 저기 있잖아요 저녁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시면 우리 용수 형 나락 정리하는데 도와주러 가는 것이 어때요?


하는 것이다. 그렇다 대식이는 여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선문답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같이 도와주러 가고 싶었지만 나의 스케줄을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주뼛하게 혼자 차를 몰고 가기는 그러니 함께 가고 싶었지만 나의 의중을 몰라 뜸을 들였던 것이다.  이심전심이라 더 이상 이 곳에 미적미적 될 이유가 없으니 곧바로 대식이 승용차로 용수의 고향인 상주로 향해 내 달렸다. 물론 놀래 줄 심산으로 뒤따라 간다고 일부러 전화는 하지 않았다.


용수의 고향은 대구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상주시 모서면 호음리였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황간 IC에서 빠져나와 절경이 빼어나 이름이 제법 알려진 월류봉을 끼고 10여분 가면 열댓 가구가 모여 사는 아늑한 시골이었다.


이미 몇 번 농사일을 도와주기 위해 혹은 놀러 간 적이 있었기에 위치며 홀로 계신 모친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서산의 노을을 바라보며 둘이 깜짝 놀랄 표정 짓는 모습을 상상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 월류봉을 막 지났을 때였다.


상호에게 전화가 왔는데 받기 전에 누구에게 왔다는 것을 전화기를 대식이에게 보여주며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로 교감하며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십중팔구 뭔가 꿍꿍이가 있었을 것이라 확신을 했었기 때문이다.


-상호:“형님, 지금 어딥니까?


하고 다짜고짜 묻는데 뭔가 평소와는 다른 다소 긴장되고 조금은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또 무슨 뻥을 치려니 하고 생각하였기에 느긋한 목소리로


-:“조금 전 퇴근해서 집이야 근데 왜?


-상호:“혹 저녁에 무슨 약속 있어요?


-:“왜? 동네 친구가 술 한잔 하자고 하는데 조금 있다가 나가보려고


-상호:“형님, 저기 죄송한데 약속하신 거 양해를 구하고 지금 용수 동네로 지금 빨리 와 줄 수 있겠어요”


-:“아니 왜? 너희 둘이 나락 정리하러 간다고 내려갔잖아 근데 무슨 문제가 생겼어?


하고는 대식이와 다시 눈빛으로 교차하며 나눈 눈웃음 속에는 분명 우리가 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기는 했지만 화물차이니 필시 앞서 지나가는 우리 차를 발견하고는 뻥을 치려는구나’라고 확신하였다.


-상호:“형님. 지금 사고가 생겨서 차를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해 놓고 꼼짝 못 하고 있어요”


분명 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 어디 너희가 뻥 치면 나도 되받아 뻥을  친다는 생각으로 ‘이 녀석들에게 평소 참 많이 당했으니 어디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는 심정으로 비웃고 있었지만 막상 사고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처음부터 통화 내용을 옆에서 다 듣고 있던 대식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썩소(썩은 미소)를 지으며 내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대식:“에이 형님, 속지 말아요 뻥이 분명하니 속아주는 척만 하세요라고 손사래와 함께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뻥을 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내 판단은 대식이 생각과는 달리 분명 무슨 사단이 난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아니 사고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다쳤어 어떻게 된 거야?


이 말을 하자마자 대식이는 또다시 강한 손사래를 치며 얼굴 표정과 눈 빛으로 절대 속지 말라고 극구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어 자초지종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상호:“지금 추풍령 휴게소 얼마 앞둔 곳인데 갑자기 용수 차가 퍼져서 겨우 갓 길 정차는 해 두었어요 근데 아무리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아 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아니 갑자기 차가 왜?


-상호:“저도 잘 모르겠어요 달리는 중에 갑자기 시동이 꺼져 버렸는데 원인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용수는 뭐 하고 있어?


-상호“아! 용수요 차를 갓길에 세워 놓고 정비공장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엔진 오일을 사서 보충하면 혹 시동이 걸릴 수도 있다 하여 추풍령 휴게소까지 엔진 오일 사러 걸어갔고 지금 혼자 차 옆에 있어요”


미심쩍기는 했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다소 떨렸고 상황이 다급한 것 같아 전혀  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식이는 계속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몇 번이고 확실히 뻥임을 강조하였다.


-:“어 참 큰일 났네 갓길에 그냥 정차해 있으면 위험할 텐데 그래 삼각대라도 세워놓았어?


-상호:“삼각대를 세워놓았는데 큰 차량들이 바로 옆을 쌩쌩 대며 지나가니 바람에 날려 무용지물이고 비상점멸등은 켜 놓았지만 차 근처에 있자니 약간 겁도 나고 그래요”


-상호:“그런데 형님, 지금 차가 고장 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나락 거두는 것이 당장 큰일인데…”“용수 어머니가 나락을 말린다고 도로 가에 늘어놓았는데 당장 그것을 담아서 창고에 갔다 넣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상호:“지금 용수 어머니가 나락 늘어놓은 도로 가에 기다리고 계신데 차가 이 모양이고 또 시동이 다시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더 어둡기 전에 나락을 포대에 담아 창고에 넣어야 하니 빨리 이곳으로 내려와 줄 수 있는지요?


-:“그래 알았어 그러면 가능하면 빨리 출발하도록 노력해 볼게 사정이 그렇다니 약속을 취소하고 가도록 해야겠지 일단 알았고 출발하게 된다면 곧바로 전화할게”


하고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 대식이는 기다렸다는 듯


-대식:“에이 참 형님 속으면 안 돼요 분명 우리 차량을 보고 뻥을 치는 것이니 그냥 못 간다고 말해요 혹시 내 차를 봤다 해도 형님이 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려고 뻥을 치는 것 같은데 에이 형님 참 순진하시네”


하며 핀잔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냐 아냐 목소리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뻥을 치지는 않을 거야 일단 내가 지금 위치를 솔직히 이야기할 테니 그냥 속는 셈 치고 가만히 있어봐”


하고는 다시 상호에게 전화를 하였다. 이것은 분명 뻥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기에 또다시 만류하는 대식이 손을 뿌리치고


-:“상호야 사실 지금 대식이하고 월류봉을 막 지났는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하고 말하니 이번에는 순간적으로 상호가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듯하였다.


-상호:“에이 형님 지금 정말 농담할 상황이 아니에요 뻥 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진짜라니까요”


하며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참 평소에 얼마나 뻥을 치며 지냈기에 서로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정색을 하며


-:“상호야, 뻥이 아니라 솔직히 너희 둘이 가는 것을 보고 고생한다 싶어 바로 뒤따라 왔어 못 믿겠으면 옆에 대식이가 있으니 확인해 보면 알 것 아냐”


하고는 통화 상태에서 대식이에게 전화기를 넘기니 대식이는 나의 행동이 몹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건네준 전화기를 마지못해 받고는 재차 썩소(썩은 미소)를 띄우며


-대식:“상호 형님,  안뇽! 에이 들켜 버렸네 맞아요 좀 전에 월류봉 지났어요”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전화기를 빼앗고는


-:“상호야, 이제 확실히 믿겠어 그러니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봐”


그러자 그제야 내 말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상호는


-상호:“와! 진짜 천만다행이다. 형님 그러면 일단 호음리로 들어서서 조금만 가면 도로 가에 나락 말린다고 늘어놓았는데 용수 어머니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그러니 우선 그것만 해결해 줘요”


:“그런데 상호야,  문제는 내 화물차로 온 것이 아니라 대중이 승용차로 왔어 어떡하지 나락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많은 나락을 승용차로 다 나를 수는 없고 이 곳에 화물차를 한 대 수배해 주면 좋은데 용수 오면 이야기해서 방법 좀 찾아 보고 우리는 일단 그쪽으로 빨리 갈게”


하고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가지고 대식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식이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보다는 아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서로 맞다 아니다 하는데 갑자기 대식이가 옆구리를 툭 치더니


-대식:“에이 형님, 그 봐요 내가 분명 뻥이라고 했잖아요 저기 뒤따라 오는 화물차 용수 형 차 맞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룸 미러를 보니 100여 미터 후방에 1톤 화물차가 한대가 따라오는데 다소 거리가 있어 차량번호와 운전자는 잘 확인이 안 되지만 차종, 색상, 외관상태는 분명 영락없는 용수 화물차로 보였다.


순간 속은 것에 대해 '이것들이 나를 아예 갖고 노는구나'며 무척이나 화가 났다. 하지만 확실히 차량번호를 확인하려고 대식이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하고는 바로 뒤따라 오는 차를 계속 지켜보았지만 국도인지라 길이 수시로 굽어지니 제대로 확실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머지않는 앞쪽에 갈림길이 있어


-:“대식아,  차를 저 쪽 넓은 갓길에 잠시 세워봐라 진짜인지 제대로 확인 좀 해야겠다” 하니


-대식:“에이 형님 맞다니까요 확실해요 우리가 지금  철저히 농간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하면서도 내 눈치를 슬금슬금 곁눈질하더니 결국 갈림길 넓은 곳에 차를 세웠다. 이윽고 바로 뒤따라 오는 차의 차량 번호와 운전자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그 차는 우리가 가는 방향이 아닌 좌측방향으로 휙 하니 스쳐 지나갔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 보고는 나락이 널려 있는 곳으로 급히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바로 뒤 따라오던 차량은 외관이 너무나 비슷했지만 분명 차량 번호도 달랐고 확실히 용수 화물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뻥이 아닌 사실로 굳어지면서 나락도 나락이고 고장 나서 갓길에서 세워두었다는 용수와 상호의 안위가 무척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다시 상호에게 전화를 하니 용수가 응급조치를 해 보겠다고 왕복 2㎞가 넘는 거리에 있는 추풍령 휴게소에 가서 엔진오일을 사서 부어 보았으나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제는 나락을 담아 창고에 넣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 되었다.


-:“상호야,  일단 여기 나락은 어떻게든 대식이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나락 옮길 화물차 한 대를 빨리 수배해 줘 그리고 고장 난 차는 어차피 방법이 없으니 보험사에 연락하면 긴급 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견인하여 그 부근에서 고치던 그 문제는 둘이서 알아서 하거라”


하고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호음리 동네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니 옅은 땅거미 사이로 용수 모친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차를 길옆에 주차시키고 인사를 드리니 깜짝 놀라며


-용수 어머니:“아이고 어찌 이리 왔는고 다들 바쁠 텐데 나락 때문에 온 모양인데 그래 용수도 곧 도착할 것 같은데 어떻게 먼저 왔어…”


하시며 손을 덥석 잡고는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그렇다 용수 모친은 아직 용수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았다. 참 난감하였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서 움직이지 못해 꼼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하지만 괜히 걱정을 하실까 봐 사실을 대충 얼버무려 별일 아닌 듯이 말씀드렸다.


-:“어머니 따로 출발했는데 오다가 용수 차가 고장 나서 지금 정비소에 잠시 들렀다 온다고 하니 걱정 마시고 나락은 저희가 알아서 창고로 운반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 마십시오”


하고는 주변을 살펴보니 자식이 늦게까지 고생할까 걱정되어 그 많은 나락을 포대에 이미 다 담아 길 옆에 쭉 늘어놓으셨던 것이다. 이제는 운반하는 일만 남았으니 화물차만 수배되면 그리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상호한테 전화가 왔다.


-상호:“형님, 도착했어요?


-:“응, 방금 도착했는데 어머님이 이미 이 많은 나락을 포대에 다 담아 놓으셨어 창고에 나르기만 하면 되는데…”


-상호:“아! 그 문제 해결됐어요 차는 바로 앞집 택상(용수 친구)이 집에 1톤 화물차가 있다 하니 그 차를 이용하면 되고 택상이가 조금 전에 시골집에 전화해 놓았으니 어른께 키를 받아 사용하시면 돼요”


-:“그래 알았어 그러면 이제 이 곳 나락 걱정할 것 없고 지금 그쪽 상황은 어떻게 되었어?


-상호:“아~ 지금 긴급 출동 서비스 차가 와서 견인해서 추풍령 부근 정비소로 가고 있어요.


-:“그래 그럼 알았어 이제 걱정할 것 없네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 마음 놓고 그쪽 일은 둘이서 알아서 잘 해결 해”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지지만 시간이 문제인지 달리 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차를 용수네 집 옆에 주차를 하고 바로 앞에 있는 택상이 집 대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으나 도무지 인기척이 없었다. 어르신께서 주무시고 계신지 아니면 귀가 어두워서 잘 안 들려 그런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대문이 안쪽으로 걸려 있으니 강제로 열 수도 없고 마음은 급한지라  차라리 벽돌담을 넘는 것이 빠를 것이라 판단하였다. 가슴 높이 정도의 대문 옆 벽돌 담을 손으로 잡고 점프를 하는 순간 “꽈당탕”하는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내 눈 앞을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담을 넘으려고 벽돌담 상단부를 집고 힘을 주는 순간 벽돌 여러 장과 동시에 그대로 뒤로 나뒹굴며 가슴에 통증과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 속은 하얗게 되어버렸다. 도대체 뭐가 뭔지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대식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대식:“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하는 대식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려 주변을 살피니 벽돌 여러 장이 박살이 난 채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한 장은 가슴 위에 덩그러니 앉아 비웃고 있었다. 그렇다 담이라고 쌓아 놓은 벽돌이 너무 오래되어 부식이 되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튼튼하게 보였으나 발로 툭툭 치니 그냥 가루가 날 정도로 무늬만 벽돌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재차


-대식:“형님, 정말 괜찮으세요?


하고 몇 번이고 걱정되어 묻는 대식이의 말에 아프기도 하고 창피하고도 하여


-:“응 됐어 괜찮아 괜찮아”


하였지만 사실 썩 괜찮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 정도의 통증으로 아프다고 도저히 말할 입장도 아니었다. 이 요란스런 와중에도 안에는 인기척이 없으니 통증을 참고 일단 무너진 담장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문을 열고 몇 번 부른 다음에야 택상이 아버지께서 나오셨고 차 열쇠를 건네받아 나락을 나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 고질병같이 오른 팔꿈치가 늘 아픈 대식이는 나락 포대를 차 위로 들어 올릴 입장이 아니니 결국 차 위로 안아 올리면 위에서 받아 주는 보조 역할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네 번에 걸쳐 나락을 실어 창고에 다 옮기고 나니 숨은 가빠오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며 양쪽 콧구멍에는 증기 기관차가 경사진 철로를 올라가 듯 마구마구 뜨거운 증기를 내뿜었다.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헉헉거리면 시멘트 봉당에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용수 모친이


-용수 어머니:“아이고 얼마나 고생 많았어 너무 고맙네 고마우이 많이 시장하지 빨리 저녁 지어줄 터이니 조금만 기다렸다 먹고 가게”


하셨지만 이 곳에 느긋하게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일을 핑계로 빨리 올라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섰다. 전에 몇 번을 찾아뵈었지만 언제나 다감다정하셨고 친 어머님과 같이 대했던 분이었다. 농사일 하시며 힘드시기도 하고 혼자 계시니 많이 적적하셨을 텐데 저녁이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오래 있지 못하고 서둘러 나서는 죄송함에 마음 한켠이 먹먹했다.


집을 나서며 부서진 택상이 벽돌담을 대충 정리하고는 나락을 옮기느라 통화할 짬이 없었는데 이제는 용수와 상호의 상황이 궁금하여 전화를 하였다.


-:“상호야, 나락은 창고에 다 넣었고 이쪽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어 이제 대구로 출발하는데 그쪽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


-상호:“형님, 정말로 수고했습니다. 근데 견인해서 추풍령 근방 정비소에 들렀는데 이 곳에는 수리를 할 수 없고 아무래도 대구까지 견인해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올라가는 길에 우리를 태우러 오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요?


-:“아니 그럴 것 없이 견인차량에 같이 타고 바로 올라가거라 우리가 번거롭게 그쪽으로 태우러 가는 것도 어중간하고 그러니 아마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조심해서 올라가고 대구서 만나자”


다행히 그렇게 그렇게 그날 나락 거두는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대구로 가면서 모두가 별 탈없이 무사하게 된 것 그리고 우리가 적절한 시간에 내려간 절묘한 타이밍과 뻥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대식아, 이놈아 네가 평소에 그렇게 뻥을 치고 다니니 당연히 남이 말하는 진담조차 잘 안 믿게 되잖아 이제 제발 뻥 좀 치지 마라 알았지”


하고는 대구에 도착하여 술 한잔을 하면서 각자 그 날의 일을 무슨 무용담처럼 서로 이야기하며 앞으로는 가급적 뻥을 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 참 용수 차는 거금 250만 원가량을 들여 수리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고 그것도 다음날 저녁이나 되어야 수리가 끝난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어찌 되었건 그날 일을 다시 돌이켜 보면 정작 시골에 가서 나락을 거두겠다고 일을 서둘러 마치고 작정하고 내려간 둘은 결과적으로 나락은 구경도 못하고 되돌아왔고 몰래 뒤따라 가서 조금 도와주며 마음만 전하겠다고 내려간 둘 아니 나만 비지땀을 흘려가며 밤이 짙도록 실컷 일을 하고 온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가슴팍과 정강이는 상처와 멍이 들고 다소 통증도 있었지만 뭐라도 말할 입장이 못되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이심전심이라 해야 할까 평소에 장난스레 아무렇지 않게 뻥을 치며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였지만 평소에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날 나락 거두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간혹 그때를 회상하면 가슴속에서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