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14. 7. 28. 16:39

 

 

---기부와 기증이란?---

우리나라는 외적으로는 OECD 회원국이 될 정도로 경제의 규모는 커졌으나 기부나 기증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분위기가 선진국가의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 보니 2011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에서 세계 153개국을 대상으로 국제 기부통계지수를 조사결과 한국은 35% 기부비율로 57위의 순위에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은 기부비율이 65% 한국보다 월등히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는데 미국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기부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년도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민의 절반을 훌쩍 넘는 63.6% 기부하지 않았다고 답하였다. 기부 하지 않았을까? 대해  62.6%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하였다.

 

기부라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가장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부에 대해 사회적분위기가 점진적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원인은 농경문화의 정신적 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농경문화에 있어서 땅은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 혈연관계가 중심인 농경사회는 공공성 같은 사회환원적 차원 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손에게 대물려 줄 농토(자산) 즉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이러한 요인들이 은연중에 각인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부와 기증의 굳이 차이점을 말하자면 기부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어 놓음이고 기증은 선물이나 기념으로 타인에게 물건을 그저 주는 것인데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기부나 기증의 공통점은 대가 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 놓는 다는 것이다.

 

먼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서두에 밝히고자 하는 것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거나 사회운동가도 아니니 캠페인을 벌일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적고 싶었을 뿐이니 오해나 곡해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기부에 대해서 금액이 적던 많던 산발적으로는 했으나 여태껏 한 단체라도 현재까지 꾸준히 해 온 것이 아니니 언급할 것은 없지만 기증 중 신체 기증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신체 기증에 대해서 많이 망설이는 것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해서 구한말(舊韓末)까지만 해도 손톱발톱은 물론 하물며 머리카락 마저 함부로 하지 않고 소중히 다루는 사회분위기였다. 개화시기에 상투 자르는 것 즉 단발령(斷髮令)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목숨과 같이 지켰던 것은 아마 그러한 영향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에게 물려 받은 몸이니 이를 함부로 한다는 것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으로 온전히 보전시켜야 함은 당연지사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이 사회저변에 잠재되어 있으니 자연히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것에는 많이 망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의 뜻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신만을 잘 보존하라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 즉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하여 자신이나 부모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어찌되었던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신체기증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으니 기증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 탓에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기증을 한다고 해도 어떤 형태이던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니 결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이십 년 전쯤으로 생각된다.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이 사회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살던 각자의 인생이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겠지만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더불어 함께 살아 가는 세상에 할 수 있다면 작은 역할일지언정 동참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부나 기증을 생각하였지만 박봉으로 늘 빠듯한 살림이었으니 금전적 물질적 기부 보다는 기증 특히 신체 기증으로 생각이 기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기부나 기증의 본래 취지가 금액의 대소나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이 아님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이 신체기증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곳을 수소문 끝에 사랑의 장기 기증 본부를 알게 되어 회원등록을 하였다

처음에는 다소 성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신장(腎臟)을 기증 하려고 했었다. 물론 자신의 한 쪽 신장을 떼내 주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결심을 하고 신청을 하였는데 간과한 것은 기증자의 의사(意思)만으로 결정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며칠간 뜸을 들이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였더니 가족 모두가 일언지하에 어림도 없다며 쌍수로 반대하는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가족 동의가 필요 없는 다른 장기(臟器)와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동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다른 장기와 각막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미래의 날이었기에 당장이라도 실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가장 간단하고 언제라도 수시로 할 수 있는 헌혈을 택했다.

그 때까지 헌혈을 한번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단체헌혈을 처음 한 적이 있었고 그리고 군 생활 당시 한번 이렇게 고작 두 번한 것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여 현재 전혈(全血)과 혈장 합쳐 140여 회 정도 하였는데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날까지는 꾸준히 하려고 한다.

 

가끔 이동용 차량에서도 몇 번 했지만 다행히 적십자 혈액원이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아 대부분은 그 곳에서 하였다. 헌혈을 하면서 목격한 것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혈장헌혈의 경우 색상이 소변과 비슷한데 처음 헌혈하러 온 분이 여기가 수술하는 병원도 아닌데 왜 소변을 받는 중환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헌혈하던 분들이나 간호원 모두가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처음 헌혈하는 분들은 혈장이 소변색상과 비슷하니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한 번은 30대 중반의 남자 분이 처음 헌혈을 하러 오면서 부인과 아이를 대동하여 왔었다. 헌혈을 하게 된 경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대화 내용을 대충 들어 보니 전 날 집에서 나름대로 헌혈에 대한 취지나 사회 봉사에 대해 큰소리치며 호언장담하였던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주사바늘이 팔에 꽂히기 전부터 사색이 되어 과장되게 엄살을 부리더니 급기야 피가 헌혈 봉투에 담길 때 극에 달했다가 헌혈한 후에는 곧장 임종 직전의 환자 모드(MODE)로 바뀌었다. 그러자 놀란 간호사는 물론 부인과 아이들의 걱정스런 눈길과 염려 그리고 격려 속에 한참 요란을 떨었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설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개선장군 같이 당당히 나서던 모습이 떠오른다.

 

또 간혹 목격한 것 중에 처음 헌혈을 하는 분들 가운데 젊은 분들은 대체적으로 특별한

일 없이 헌혈을 하고 가지만 40대나 50대의 분들이 혼자 혹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게 가족이나 지인 가운데 수술로 인해 수혈이 필요로 하여 오는 분들이 많다. 즉 당장 전해 줄 헌혈증이 필요해서 오는 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 가운데 대다수는 헌혈 조건이 맞이 않아 하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헌혈에 대해 좀더 언급하자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자신의 몸에 피를 뽑았으니 면역력이나 기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등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데 하지만 지금까지 헌혈을 하면서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신체 변화를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좋게 느껴질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만인 것이다. 헌혈을 하고 나서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헌혈 횟수가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사회봉사에 동참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뿌듯한 마음도 있었고 스스로 만족감에 도취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를 위해서 한다기 보다 주기적인 헌혈은 오히려 내 건강을 지킨다고 생각을 한다.

헌혈을 하게 되면 새로운 피를 만들어야 하니 나의 세포 일부 가운데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기를 좋아하는 세포가 갑자기 비상상황이 발생되어 긴급히 내려진 뇌의 명령(ORDER)에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몸 안의 모든 세포가 활발해져 오히려 내 몸이 더욱 건강해 지지 않을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 한다. 물론 헌혈 후 몸 속의 변화를 알 길도 없고 이에 관련한 의학적 지식도 없지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물론 근거도 확실치도 않아 혼자만이 생각이지만 헌혈을 계속함에 있어서 이것이 맞던 틀리던 아무런 상관 관계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체내 혈액량이 충분하면 어차피 남아서 필요 없는 것은 땀이나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이니 아까울 것이 뭐가 있으랴 하는 생각이다.

 

헌혈 예찬론자가 아니라 헌혈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은 그만치 건강하다는 것으로 건강의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지금은 거창하게 사회에 봉사니 희생이니 자기 만족도 아닌 아무런 의미 둘 것도 없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때가 되면 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고자 하는 골자는 헌혈에 관한 것이 아닌데 경험과 목격담을 적다 보니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같다.

열흘 전쯤에 집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느닷없이 도대체 내 몰래 또 무슨 기증을 했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기에 무슨 일로 그리 화를 내냐?”고 물었더니 조혈모은행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전화가 왔서 당신을 찾기에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기증에 대한 사항인데 당사자와 직접 통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일단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곳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테니 전화를 해보고 도대체 내 몰래 무슨 짓을 했는지 퇴근하여 자초지종을 상세히 보고(설명)하며 무자비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집으로 전화한 이유는 오래 전에 일이라 그 당시에는 나에게 휴대폰이 없어 집 전화를 적었는데 다행히 아직도 집 전화 번호가 변경되지도 않아 연락이 닿았던 것 같았다.

 

집사람이 알려준 전화번호를 적었지만 어떤 단체인지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몰라 바로 전화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은 요즈음 스팸이나 스미싱 같은 전화가 너무 많아 혹 무슨 사기(詐欺)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먼저 인터넷으로 관련어로 검색을 했더니 한국조혈모세포은행이란 단체가 검색되었고 확인을 해 보니 집사람이 알려준 번호와 일치하여 전화를 걸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용건을 들어 보니 십오 년 전에 조혈모세포 기증에 동의하였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생각이 잘 나지도 않아 긴가민가했지만 어찌 되었던 동의했던 것도 같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현재 기증자와 조직적합성항원(HLA/)일치하는 백혈병 환우가 있는데 현재도 기증할 의사가 있냐?”고 재차 묻는 것이었다.

조직적합성항원(HLA/)이란 용어를 처음 듣기에 들어도 도시(都是)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지만 어찌 되었던 나와 일치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환우가 있으니 기증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화상으로는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어 순간 망설였지만 별달리 생각 않고 이내 그렇다고 대답하니 자세한 것은 메일로 전송 하니 읽어 보고 다시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다.

 

보내준 메일을 몇 번이고 읽어보니 조직적합성항원(HLA/)이란 것이 가족 중에는 네 사람에 한 명이고 타인인 경우 이 만 명에 한 명꼴로 HLA가 일치한다는데 기증에 동의한 사실도 오래 전의 일이라 잘 기억 나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십오 년 만에 일치하는 기증할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할 뿐이었다. 피를 나눈 가족간에도 확률이 그러한데 다른 사람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는가

 

내용에는 기증자와 환우의 서로 신상을 알 수 없게 매개체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트가 있다는 것과 앞으로 어떤 일정으로 기증이 이뤄지는지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다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두어가지 있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23일간의 입원이었다.

직원이 혼자인 관계로 업무의 특성상 아무에게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동의는 했기에 한편으로는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그렇지만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래처와는 사전에 조율하면 그리 문제 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또 하나는 가족동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유사한 경험이 있어 무조건 집사람이 반대를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상황을 잘 설명하여 설득시킨다면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것은 희망을 잃지 않고 애타게 기증받을 날을 학수 고대할 백혈병 환우를 생각하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조금 뒤따른다 해도 모든 것은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 굳이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처음에 자세한 내용을 알기도 전에 선뜻 동의부터 먼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고하게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곰곰이 몇 가지 정황들을 돌이켜 보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조직적합성항원(HLA/)이란 것이 타인과 일치할 확률이 이만 명중 한 명이라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조혈모세포 기증자 등록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이를 감안하면 일치할 확률은 급격이 떨어질 것이며 게다가 어렵게 일치 되었다 해서 기증자가 거부하면 또 다시 일치하여 기증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 십오 년 만에 일치하는 환우가 생겼다는 것과 가족 모두가 휴대폰이 있어 몇 번이고 집 전화를 없애려고 했는데 이렇게 연락이 닿았다는 것 등등 여러 상황들이 참으로 신기했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은 기증 받는 환우 보다 더 가슴 벅차게 기쁜 마음뿐이었다. 살아가며 이렇게 어렵사리 맺어진 인연으로 나에게 광영스런 기회로 주어졌다는 것은 오히려 진심으로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모든 것은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힘들게 기증 받아도 기증받은 환우가 백 퍼센트 모두 성공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상황도 알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 또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또 환우가 기증받은 후에도 세포가 안정되기까지 계속적인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간 기증하고 남은 스무 장의 헌혈증을 동봉하여 그 환우에게 전해주라고 담당 코디네이트에게 오늘 우편으로 부쳤다.

물론 헌혈증에는 개인 신상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니 다른 헌혈증 기증자의 것과 바꿔서 같이 선물한다는 말과 덧붙여

 

세상일이 모두 그런 것 같다. 모든 것에 자꾸 의미를 붙이자면 자기 합리화가 될 것이며 지나치면 변명이 될 것이다.

그냥 의미 없을 것에 자꾸만 의미를 더 해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재삼 언급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기적이 일어난 것은 기증받을 환우가 아니라 이렇게 가슴 두근거릴 정도로 기쁜 기회를 준 내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밝히지만 몇 달 전 가족에게 아무 상의도 없이 경북대 의과대학에 시신도 기증하였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되돌아 가고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숙명 같은 우리 인생이 아니든가

이 세상에 유랑 객으로 왔으니 언젠가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이거늘 아끼고 남겨서 무얼 하랴 공짜로 받았고 내 것이라 할 것이 없으니 모두 다 두고 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되어 기증 받을 환우가 새 생명을 얻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를 가슴 깊이 진심으로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