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며 느끼는 것들/더불어(癌)살아가는날들

9월16일(12차 항암 주사 맞는 날 ...마지막 항암하는 날)

헤세드다 2013. 9. 17. 10:18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 그토록 참고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마지막 항암 치료를

하는 날 여느 때와 같이 힘든 상황이 예견되지만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고 하는

그것만으로도 지나 온 날들이 꿈만 같고 설령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이 생각 만으로도 절로 힘이 나는 것 같다.

설렁탕을 데워 아침을 먹고 혹시 항암 치료가 늦어 지면 배가 고플까 하여 몇 가지

과일을 손질하여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을 쌌다.

오늘은 예약 시간이 평소 보다 다소 늦어 큰애를 회사에 태워 주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병원으로 향하면서 속이 좋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약간은 밝은 모습인

것은 이번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병원에 내려 주고 오전 일을 얼추 마무리 하고 다시 병원으로 가니 늦게 시작한 탓인지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였다.

기다리다 남은 과일을 같이 먹고 마지막 주사가 끝나고 케모포트에 항암 주사바늘을 꽂으니

벌써 3시 반이 지났다

배고 고프고 빨리 회사로 가봐야 할 일이 있어 서둘러 점심을 먹고 가려고 집 쪽으로 차를

몰며 교차로에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도 블록 위에 잡화 행상 쪽을 가리키며

머리 띠를 사달라고 한다.

1차선에 있어 차를 길 옆으로 대기도 힘든 상황이고 지금 빨리 점심을 먹고 회사를 가 봐야

하기에 내심 시간에 쫓기어 마음이 조마조마 하는데 자꾸만 사달라고 조른다.

사실 항암 치료하는 날이 아니면 빨리 집에 내려 주고 점심을 챙겨 먹으라 하고는 빨리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할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늦은 시간이지만 밥을 챙겨 먹이기 위해 식당으로 급히

가려는데 자꾸만 보챈다.

다음에 사면 안되겠느냐 다른 곳에 가서 좋은 것을 사지 하고 몇 번을 말했지만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교차로를 지나 급히 차를 길 가에 주차시켜 놓고는 액세서리 파는 곳으로

가 보았으나 정작 주인이 어디 가고 없었다.

급한 마음에 주변 상가 분들과 행상을 하는 분들께 물어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니 찾아 다닐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주변을 서성이며 기다리기를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분명 빈 손으로 가면 갖은 잔소리를 다 할 테니 그냥 갈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빨리 회사에 가 봐야 하는데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보니 벌써 시간이 20분을 넘겼다. 이제 마지막이다 싶어 조금 떨어진 곳의

리어카에 빵 종류를 팔고 있는 분에게 물었더니 조금 전에 보았다며 두리 번 거리며 찾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저 분이다 고 하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빨리 가서 머리 띠 두 개를 사서 차 안에 와서 비닐 봉투를 던지듯 주며

아니 지금 회사를 빨리 들어 가 봐야 하는데 꼭 이것을 사야만 하냐?”며 버럭 화를 내었더니

울기 시작한다.

미안한 마음이 왜 들지 않겠냐 마는 그 보다는 바쁜데 이런 사정은 아랑곳 않고 철부지

아이 마냥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칭얼대며 보채는 상황이 더 화가 났다.

이미 4시를 넘어 배는 고프지만 점심 먹을 상황도 아니어서 집에 태워 줄 테니 알아서

챙겨 먹고 난 회사로 바로 가 봐야 하니 같이 먹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니

참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어찌 되었던 밥을 먹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먹고 싶다고

하는데 회사는 빨리 가 봐야 하고 할 수 없이 가는 길에 국수 집에 들러 칼 제비를 시키니

배추 전이 먹고 싶다고 하여 뜨거운 국수가 코로 입으로 어디로 들어 가는지 씹는 둥

마는 둥하며 서둘러 먹고 집에 내려 준 다음 급히 차를 회사로 몰았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급한 회사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참 이럴 때는

그저 숨이 턱턱 막혀 올 뿐이다.

회사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퇴근 길에 큰애를 태워 가면서 다슬기 국을 사서 집으로

가니 아까 일 때문에 많이 속이 상했는지 쳐다 볼 생각도 않는다.

큰애에게 국을 데워 저녁을 먹게 하라고 부탁하고는 운동 하러 나섰지만 내내 마음 한 켠이

걸렸다.

이런 저런 생각에 혼자서 술을 한잔 먹고는 집에 가니 아직 삐쳐 얼굴 볼 생각도 하지 않아

손을 잡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힘든데 지금까지 잘 참아 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