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2일
휴가 끝나고 첫 출근 날이라 그런지 아니면 더운 날씨 탓인지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아침을 안 챙길 수도 없어 어제 애들하고 해서 먹고 남아 있던 카레를 데우고
물김치 과일 등으로 아침을 차려 주니 무슨 심통이 났는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다.
올 여름 더위가 정점으로 치닫는지 오늘은 아침부터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
집에 그냥 있으면 덥기도 하겠지만 휴가 중인 막내랑 시원한 공원으로 외출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채근을 하고는 출근 길에 나섰다.
회사 일이 바빠 점심 때는 전화를 하니 막내랑 콩 국수를 끓여 먹고 있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퇴근 때가 되었지만 무더위는 전혀 꺾일 기미가 없다.
집에 들어 서니 찜질 방 같은 열기가 집안 한 가득 인데 막내는 볼 일을 보고 금방 들어
왔는데 피곤한지 자고 있었고 멸치를 다듬고 있기에 뭘 하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애들 주려고
고추랑 볶고 또 감자,양파 등 집에 있는 야채를 볶고 오이 냉국도 한다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여 아예 주방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할 테니 보조만 하라고 하였다.
오랜 만에 막내도 오고 했으니 제대로 저녁 준비를 하려니 기대했던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된장 찌개를 끓이고 애들이 좋아하는 계란 찜과 양배추를 찌고 오이 양파 무침, 그리고 오이
냉국 등으로 열심히 저녁 반찬을 하고 있다 문득 전에 생각이 나서 오이 냉국 재료를 모두
준비해서 간을 하라고 건넸는데 자꾸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한다.
뭔가 한 가지 빠진 맛이 난다며 마늘을 넣었느냐? 파는 썰어 넣었느냐? 미역은 데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데쳐서 이런 맛이 나게 했느냐? 며 계속 바가지를 긁어 댄다.
미역은 불려서 썰어 준 것이 전부이고 데칠 시간도 없었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해도
말을 믿지 못하고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신경을 거슬러 댄다.
진작에 저녁 준비를 하지 않고 이제야 뭘 할 듯 말 듯 하는 것도 그렇지만 땀을 닦아 가며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맛이 나지 않는 탓을 내게 돌려 계속 퍼 붇는다.
정말이지 짜증이 나서 밥을 차려 주기는 하겠지만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이 확 달아나고
말았지만 꾹 참고 준비를 계속 했다.
어느 정도 다 되어 가고 있을 무렵 큰애도 퇴근하고 해서 저녁 상을 준비해 주었지만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있었다
막내도 오고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 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앞서 꾹 참고 밥상에 앉아
밥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한 수저 정도 먹고 있던 밥 그릇을 들고는 밥 솥에
휙 같다 넣고는 안방으로 휑하고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참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밥을 다시 밥 솥에 넣고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분명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
환자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마인드를 바꾸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데 차려 주는 밥도 계속 어림 장을 하거나 트집을 잡고 먹으려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모든 것이 수동적이며 이제는 회복기가 다 끝나갈 때까지도 아예 주방 쪽에는 갈 생각을
않으니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 맞출 수가 있을까
휴가라고 막내도 왔으니 맛있는 반찬이라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생각은 꿈 같은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환자 놀이에 익숙해서인가 아니면 환자 놀이를 하니 편해서 그런가 도대체 알 수 가 없다.
병을 고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지금 당장 겉으로 들어난 것이 없으니 완치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지 물론 완치 되었다고 생각이야 하겠냐 마는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병원에는 가기 싫고 아프기도 싫고 그렇다고 집 안 살림하기도 싫고 그저 밖에 가서
놀다 들어 오는 것만 좋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간병을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겠다고 포기 할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간병을 하자니 환자가 싫다고
다가 설수록 도망을 치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 되어야 할지………..
아! 꿈 같은 이야기지만 정말 오늘이라도 완치 판정을 받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을 손 놓고
떠나버리고 싶다. 비록 그 가는 길이 삶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 할지언정 무슨 미련이 남아
있으랴 이 어깨에 짊어 진 짐이 오늘 따라 너무 무거워 질끈 눈 감아 버리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