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13. 8. 5. 10:46

이제는 주방과는 아예 거리를 둘 심산인 것 같이 느껴진다.

이번 항암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부작용이 더 오래 간 것 같다.

선식과 아침을 차려 주고는 삶아대는 날씨 속을 가르며 출근을 했지만

딱히 할 일이 있다기 보다는 월요일 항암 주사를 대비해 조금 늦을 수도 있을 듯하여

미리 업무 정리를 해 놓고는 소파에 앉아 한 주간을 되돌아 보는 오랜만에 망중한의 시간을

가져 본다.

점심을 처제와 M,장과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하여 살아온 근황을 물으며 오랜만에 이야기 꽃을

피웠다.

두 사람이 신혼도 아니건만 아직까지 티격태격하니 장모님 대리 역할을 한답시고 집사람이

처제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아프고 나서부터 생각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한편으로는 어른스러워진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처가 집 쪽에 두 어른이 안 계신

부재의 허전함도 함께 오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운동을 갈까 말까 망설이기에 아직 시간이 많으니 실컷 놀다 오라고 아예

부근까지 태워주고는 집으로 돌아 왔다.

저녁에는 며칠 전부터 막내 생일이 몇 일 지났지만 챙겨주지도 못했으니  네 식구가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하자고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터라 애들은 시내에서 약속 장소로 바로 가고 우린

자그만 우산을 겨우 머리 만 비를 피한 체 둘이서 꼭 부여잡고 조금 늦게 약속 장소로 갔다.

주말에도 뷔페 집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굶주린 이들이 서로 먹이를 두고 경쟁을 벌리는 듯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 같아 대열에 합류하기 보다는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그리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집에 와서는 그간 막내랑 쌓여 놓았던 회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 떠나면 효자가 된다던데

얼마 사이에 부쩍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고 한편으로 혼자 생활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 마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