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13. 1. 10. 16:48

 

 

 

저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그런지 새벽 잠이 없어 일찍 자는 편도 아닌데 몇 년

전부터 3시쯤 이면 자동으로 눈이 뜨여집니다.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새벽에 일어나 물 한잔을 들이키고는 잠이 오질 않아 덜 깨인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물론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서였지요

환기를 위해 아니 혹시나 담배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거실로 향하는 문을 닫고 창문을 여니 겨울 칼 바람이 온 몸을 찌

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 없이 시도했지만 쉽게 끊지를 못하

겠더군요

여느 때와 같이 담배에 불을 댕기고 하늘의 별 빛을 잠시 응시하다 무심코 배란다 안 쪽을 보니 쓰레기 봉투 옆에 쓰다 버린 흰 화장지가 하나가 떨어져있었습니다.

순간 입구가 큰 쓰레기 봉투(30리터)에 자그마한 화장지 한 장을 제대로 넣지 못해 옆에 떨어져 있는 것에 다소 마음이 언짢아졌습니다.

 

평소 집안에서 배출 되는 쓰레기 즉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재활용 쓰레기 등 모든 쓰레기 처리는 저의 몫입니다. 물론 식구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치면 좋으련만 집 사람은 왕비 병 딸 둘은 공주병에 걸린 상태라 대충 비슷한 위치에 던져 놓아도 감지덕지로 그것을 제대로 정리해서 처리하는 것은 저의 막중한 고유(?)임무였습니다.

 

사실 일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물 쓰레기 통이 많이 먹여 배가 터진다 아

우성을 쳐도 통을 밖에 내어 놓기 싫어 죽어라 자꾸 쑤셔 넣으니 결국 배꼽

이 빠진 뚜껑이 옆에서 헉헉거리며 아이고 나 죽네 살려주이소 배가 터져

죽을 지경이니 그만 먹여주이소하고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도 누구 하나 현

관 밖에 내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음식물 쓰레기 통 혹은 쓰레기를 들고 문 밖을 나서다 다른 층의 이웃을 만나면 고상한 인격에 손상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집 밖으로는 철저한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이였지요

 

쓰레기 봉투에 넣는 일반 쓰레기도 다시 살펴야 하는 것이 분리를 하지 않고 일단 봉투에 던져 넣으니 재활용 할 것들을 다시 분리를 해야 만 했지요

또 늘 포만감에 사로 잡혀 극도로 비만한 음식물 쓰레기 통을 살리고자 병원(1층 현관 입구)에 데려갔다 치료(빈 통)가 끝나면 출근 길에 회사에 들고가 구석구석 목욕 재개 시키고 향수(세제)도 뿌려주고 퇴근 할 때까지 햇볕에 바싹 말려 깨끗이 소독한 뒤에 다시 제자리에 고이 눕혀 주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밥을 자주 먹지 않는 생활 패턴 때문에 주방 쪽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음식물 쓰레기 통이 가사(假死) 상태가 되어서야 만 발견할 때가 태반이었습니다.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를 때면 음식물 쓰레기 통 주변은 살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 역력하여 주변은 또 다른 쓰레기 장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여 년 전쯤 공주병 환자들에게 단호하게  선언을 하였습니다. ”네 엄마는 회사 일로 바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다 큰 너희들은 집에서 매일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서 이 것 하나 밖에 내놓는 것이 뭣 그리 힘이 드느냐? 오늘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물 쓰레기 통 만큼은 알아서 밖에 내어 놓거라

 

도대체 이게 뭐냐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쓰레기가 통 밖으로 넘쳐도 신경도 안 쓰니 말이다 이제부터 밖에 내어 놓는 일은 너희 몫이니 알아서들 해 난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 잘하시오라고 엄중 경고 즉 최후 통첩을 내렸습니다.. 다만 전 처럼 회사에 가져가서 다시 회생을 시켜 오는 일이나 다른 것은 똑같이 할 수 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요구는 무리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하며 냄새가 많이 난다 하여 손을 대기 싫어하고 보는 것 조차 않으려 하니  다른 것들을 왕비님과 공주님들께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장인 제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바쳐야 되지 않겠는지요

이는 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이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집 안 청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거실,화장실 청소 또한 저의 몫인 것은 너무 부지런하기나 결벽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예 할 생각도 안 할 뿐더러 정리 정돈 청결에 관한 한 너무 눈 높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를 인용하자면 달라도 너무 달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정말이지 여자 셋이 뿜어내는 머리카락은 겪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답답한 제가 할 수 밖에 없지요

오죽 했으면 쓰레기통 옆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제가 통안에 넣지 않으면 며 칠이고 치울 생각을 안 하니  차라리 쓰레기 통을 없애라라고 하겠습니까?

 

하기야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니까 여자 보다 힘이 좋기도 하고 청소하고 나면 광택도 다를 뿐 더러 특히 화장실 같은 경우 배관 안이나 구석구석 하는 방법을 모르니 전문 아닌 전문가인 내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집안의 모든 쓰레기는 누구 할 사람도 하려는 사람도 없기도 하고 혹 가뭄에 콩 나듯 집 사람이나 아이들이 청소 했다고 하지만 별반 표시도 없으며 뒤따르는 은근한 대가가 오히려 머리를 아프게 할 뿐이니 차라리 입 봉하고 제가 하는 것이 제일 속 편합니다

청소나 정리 정돈 아니 무슨 일이든 하기 싫어 억지로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많은 여자들 속에 끼여 살지만 아직까지 여자에 대해서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풀지 못할 영원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청소니 정리나 이런 것은 싫어하면서 다들 외출할 때 보면 몇 시간씩 얼굴을 지우고 닦고 바르고 또 옷은 이 옷입었다 저 옷입었다 하면서 수도 없이 거울을 보고 또 보며  온갖 정성을 들입니다. '참 우리 집 거울은 성격도 좋다'라고 생각 될 때가 많지요  어림잡아 외출 준비 시간이 족히 2시간을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외출하고 난 뒷 자리를 보면 배 터진 음식물 쓰레기 통 조차 터진 배를 잡고 웃을 지경이니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비단 저만 느끼는 일을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이 삼천포로 빠져 버렸군요

휴지 하나 주우면서 쓸데 없는 넋두리가 심했던 것아 죄송합니다.

 

쓰레기 봉투 옆에 떨어진 휴지를 주어 봉투 안에 넣으려고 허리를 굽혀 잡았으나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순간 아직 잠이 덜 깨었나하고 생각하며 재차 잡으려 했고 이번에도 그리고 또 한 번 잡으려다 그제서야 자세히 보고는 뒤통수를 한 방 크게 맞은 듯한 느낌으로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잠이 덜 깨인 것도 휴지 뭉치가 작아 안 잡힌 것도 아니었

습니다 휴지라고 잡으려 했던 그것은그것은바로 열어 놓은 문틈을 비

집고 들어 온 달님의 손길이었던 것입니.

이런 세상에 이런 세상에나 내가 달 빛을 줍다니…..’

잠시나마 여러 묘한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잠을 확 달아나게 했습니다.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한 달 빛들이 잠시 헤어져 우연히 쓰레기 통 옆에 앉아 있는 것을 휴지로 착각하여 살짝 언짢은 마음으로 너를 맞이 하였으니 참으로 미안한 맘 앞섰습니다.

 

달 빛이 밖에 머물다 북풍 칼 바람을 피해 잠시 몸을 녹이고자 마침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잠이 깰까 살며시 들어 왔는데..

또 남의 집이라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따뜻한 곳도, 깨끗한 곳도 많은데 쓰레기 봉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그렇게 매몰차게 봉투에 쳐 넣으려 했다니….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달 빛 조각을 두 손에 담아 잠시 나마 포근히 체온으로 감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두 손에 담겨있는 달 빛이 팔을 타고 올라 와 오히려 차가운 가슴을 뜨겁게 뜨겁게 데워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태까지 기분 좋게 흥이 나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쓰레기 처리 담당을 하지 않았던들 어떻게 평생 달 빛을 주워 보겠습니까? 아니 그런 생각 조차 가질 수가 있겠는지요.

집 안 일 뿐 아니라 살아 오며 불만을 가지며 해 왔던 여러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향해 새벽 달 빛 한 조각은 다소곳이 가슴에 안겨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같이 아무 말없이 그저 웃기만 하였습니다.

 

따스한 거실로 함께 가려 했으나 한사코 만류하는 통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지만 행여 창문을 닫으면 떠나 갈까 내심 불안하여 그대로 열어 두었습니다.

문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 왔지만 한 조각 달 빛으로 이 추운 겨울 어느 때보다 가슴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