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12. 12. 11. 16:25

 

곰이 재주를 잘 부린다더니

마늘 몇 접 쑥 몇 다발로 사람이 되었다.

자식들은 아비의 재주는 어설프게 닮았으나

심성이 괴팍한 것은 독한 마늘 맛 때문이었을까?

 

원했던 바가 서로 다르거늘 

잘난 솜씨 한 번 부리려 했더냐?

창세기 앞 구절만 읽었는지

대충 만들고도 저만 보기 좋으면 되렸다.

 

하늘님을 흉내 낸답시고 잔재주 부린 꼴을 보시오

대야 보다 더 큰 머리통에

갓 태어나 백발 되어 버린 머리카락

행여 눈 치켜 뜰까 눈썹만 달랑 그려 놓고 눈이라 우긴다.

내 영혼이 깨끗한 눈인데 가당찮게 너희가 만들어 준 눈을 달랴?

 

씩씩대는 소리 듣기 싫어 콧구멍 틀어막고

항변할까 두려워 입은 봉했으며

산달 지난 남산 만한 배에

탯줄을 외면하여 주먹만해진 배꼽

이 모습이 네 선조가 정녕 원하였던 형상이더냐?

 

졸라 댈까 귀찮아 앙상히 뼈만 남은 두 팔

바람날까 두려워 두 다리는 땅 속에 깊숙이 묻고

좋아라 손뼉 치는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큰 머리를 땅바닥에 한 번 쳐 박으니

 

일말의 양심은 있어

밀짚 모자에 콧수염

엄동설한에 발가벗겨 놓고

달랑 목도리 하나 걸쳐 주니

고마운 마음에 엎드려 절 하고픈 마음 간절하나 한사코 만류한다.

 

 

해맑은 웃음에 어찌 속내 들어낼까

종일 햇살에 까맣게 그을리고

온 몸의 굳은 살이 툭툭 갈라지도록 애쓰며

사랑 받기 위해 몸부림쳤거늘

이제 보기 흉하다 하여 거들떠 보지도 않는구나

 

어찌 그리도 야박터냐

잘 생기고

잘 먹고

잘 꾸미고

편히 살고픈 마음 너만 못하랴?

명색이 나도 사람이지 않더냐?

따지고 보면 근본이 다를 게 무엇이더냐?

오가는 시간만 잠시 다를 뿐인데

너희도 힘들 때 나를 왜 낳았냐고 대들지 않았더냐?

나도 그렇게 반문하고 싶구나

 

원망이 삭풍보다 날카로운 밤

얼음물을 끼얹는 듯한 친구들의 속삭임

무엇이 부족하여 더 가지려 할까?

무엇이 부러워 저리 투덜댈까?

우리는 한 평생 누워서 꼼짝없이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데

높은 곳에 앉아 넓은 세상을 두루 보며

저토록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한 번이라도 너처럼...

전율이 머리끝을 오랫동안 요동을 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교차점을 깨닫지 못해

모래 위에 수없이 그어 왔던 구분 선들

밤새 하나씩 지우며 자물치고 자물치다

불각(不覺)의 화장실에서 여명을 맞았다

 

햇살이 손을 내미는 눈부신 아침

솟구치는 참회의 눈 물이 온 몸을 적셔

붉은 족쇄를 녹여버린다.

세파 찌들어 똘똘 뭉친 몸뚱어리를 내동댕이치자

힘차게 비상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깊고 푸른 하늘을 천천히 유영 한다.

이제 진정 맑고 밝은 눈의 사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