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다 2008. 9. 24. 22:37

 


 

--- 황혼 ---

 

바삐 걷다 모든 의미를 상실하고
갑자기 당신 생각에 사무쳤습니다
.
하지만 가던 멈추다 바라보기는 싫었지요

당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 독차지하여

혼자 바라보고 싶은 부푼 마음이기에

잠자리 펴기 바삐 가야만 했습니다.

솔잎 같은 겨울 바람도

비지땀을 식히는 시린 하늘도

거울 같은 뭉친 비탈길도

날개 발걸음에 오히려 용수철이었습니다
.
당신을 보고픈 설레는 기대 앞에는 어느 하나

몸과 맘을 부여잡을 없었습니다
.

발길 더할수록 가슴 속이 같은 헐떡임

없이 토해내는 입김이 진한 안개 되어

앞을 없어도 당신 있는 느낌으로 갑니다
.
다들 진한 여운 보기를 포기한 시간에

땅에 힘주고 나뭇가지 튕기며 올랐지요


종일토록 피곤한 발걸음

조금씩 조금씩 거둬지지만

아직은 당신을 바로 바라 없어

멀리멀리 수놓은 당신의 붉고 노란 그림자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
부여안고 눈물 흘리고 싶을 정도로

당신이 만드는 진한 그림자들을


깔고 덮으며
잠자리를 분주한 당신

잠시 헤어짐에 서러움이 복받친

위로하려 금방이라도

불쑥 다시 솟아오를 것만 같은 당신


종일 내뿜던 향기 조금씩 담으니

당신은 자꾸만 초라해집니다
.
바라볼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작아지는 당신 모습

너무도 또렷이 보고 있답니다
.
어쩌면 초라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앞에 있는 모습일는지도


마지막 산부리에 걸렸군요

옆으로 조금만 힘주면

굴러굴러 것만 같은데

바라는 곳까지 들어 옮길 것도 같은데

당신의 미련들이 애타는 마음에

마지막 힘주어 더욱 붉게만 타오릅니다
.

수많은 땅거미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산의 나무를 먹어 치우고는

검은 배설물 이리 저리 뿌리더니

포만감을 채우지 못해 발끝 아래에서

쭈볏쭈볏 망설이고 있습니다
.

바위 잔설은 기지개 켜고는

안도감에 서로를 더욱 굳게 맞잡는 모습이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는 울립니다
.
잔설이 오늘만을 행복해 하듯

나도 내일의 당신 만날 기약 말고

지금의 당신을 기억하며 웃으리라고 말입니다
.

당신이 무거운 머리 눕히는 순간

산아래 언젠가 뿌려놓은 안개꽃들이

이제 정체를 드러냅니다
.
당신 앞에서 감히 숨조차 내쉬질 못하더니

빨강,파랑,노랑 형형색색이

당신 흉내 낸다 하니 가관입니다
.

이제 당신은 갔지만

아직까지 당신이 머물렀던 자리

검붉은 구름 어둠의 까마귀가 쪼을 때까지

벅찬 가슴으로 만났던 마음

자리에 새기고 새깁니다
.

나도 이제 당신을 가슴에 안은

남겨준 잔광을 의지하며

아래 속으로 깊숙이 스며야겠지요

당신이 분주했던 하늘 동쪽엔

어느새 당신 분신 하얀 날개 입고

다시 오를 때까지 지키고 밤새 있으려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