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앞산
-----눈 내리는 앞산----
서로를 밟고라도 높이들 올라가려고 하는 애타는 마음을 멀찍이서 바라만 본다.
발 옆에선 겨우 남은 잔설(殘雪)을 갖고 서로 내세우며 자랑을 하지만
먼 윗 산에는 서로 푸근히 내뿜는 기운에 내 눈(目) 먼 듯이 뿌옇게 가려만 있다.
벌거벗은 겨울 나무는 가까스로 붙잡은 눈송이에 어느 듯 제 모습을 감추었지만
여태도 제 자랑에 힘껏 뽐내던 소나무는 무게에 짓이겨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밤새 곤히 잠들었던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밀려드는 등쌀에 못 이겨 푸념 소리 끊이질 않지만
잠시 휴식을 가지는 참나무 가지 끝에 얼마 남지 않은 마른 나뭇잎이 내는 잔소리에 미안한 듯
삐이익 끼이익 괴로워하며 게으르고 눈(目)만 부지런 이들을 태우고 뒤뚱거리며 꾸욱 참고 올라만 간다.
가지 끝에 매달려 오가는 바람의 소식을 담는 까치집이 정겹기만 하고
눈이 토해내는 눈물(雪水) 소리는 가로 막히는 돌 조각하나 거스르지 않는다.
튀어 오르기도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뒤이어 오는 식구를 위해 조금도 흩트리지 않고
앞서간 그 모습 대로 내달리지만 한 순간도 제 본분을 잊지 않고 작지만 굽이친다.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가는 차디찬 겨울 바람은 내민 손 끝을 비웃듯 웃기고 지나가며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는 우주관람차는 오늘도 빈 무게에 버릇이 된 듯 여유만만 하기만 하고
지난날의 그리움에 사무쳐 괜스레 악을 써는 오락실 음악 소리는 녹는 눈도 놀라고 그 무게에 아직 보속 못한 낙엽 마저 짜증을 낸다.
모두들 가만히 하얀 이불 덮고 눈 녹는 자그마한 소리를 잊고 바쁜 발걸음 재촉하지만
이내 터질 듯 털북숭이 목련 가지는 벌써 봄 내음의 준비를 마치고 한가로운 눈길을 보낸다.
구름 새를 비집고 저 발 아래에 보이는 평리동 내 사는 곳이 환하게 밝아 와 이미 굳어버린 눈 아래 손을 넣어 힘껏 뭉쳐 이유 없이 던져 보고
어차피 남지도 않은 발자국을 찍어 오늘 이 산과 함께 했음을 내 마음 옆에 새겨본다.
왜 이리 눈 녹은 시체는 갈 길을 막아 끝까지 내 발걸음 더디게 할까?